(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필자가 <테크놀로지와 생태학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에서 창조신앙과 기독교환경론>이라는 제목으로 동역회의 <통합연구>(1991.10)에 기고한지 어느덧 28년이 지났다. 그동안 환경도 역사도 많이 변했다. 환경 문제 극복을 위해 국제사회는 1992년 ‘리우환경선언’(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이후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다. 또한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2001~2015), ‘지속가능한 지구의 발전 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2016~2030)를 세우고 미래 인류생존을 위한 지속적인 경제개발과 아울러 자연환경보존의 부단한 국제적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4차 국토종합계획(2001-2020)에서 ‘개발’이라는 용어를 빼고 ‘지속가능 친환경’이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할 정도로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했으며, 자연보존을 위한 국가적 노력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년 3% 이상 경제 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업 문제 등 사회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도시화 산업화 개발에 치중하면 자연환경 훼손과 오염은 불가피해진다. 이 긴장의 의미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면서도 모두 살 길을 찾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현재 지구환경은 1992년 대비 환경의 질은 훨씬 더 나빠지고,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등 환경적 재난 앞에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는 국제사회와 국가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구환경을 이해하고 관리해나가는 주체로서 70억 인류 개개인의 행동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보다 더 강도 높은 환경보호 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교회는 환경 문제에 앞장을 서야한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각 영역에서 특히 생활 속에서 일반 시민, 가정주부와 농어민 초중고청년들에 이르기까지 환경 문제와 관련한 빛과 소금 역할을 앞장서 감당할 수 있다면 인류에게 희망이 다시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정치투쟁 수단이 아닌 물신주의와 쾌락주의가 만연된 현대 문명사회에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심적이고 자발적인 환경보호 운동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을 버리고 성경 말씀에 순응한 순수한 환경보호 운동의 주체가 될 그릇은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방안은 우선 그리스도인들의 의식과 사고 속에 성경적 환경론을 정립시키고, 환경 생활 실천 운동이 범교단적으로, 범교회적으로, 범대중적으로 일어나게 해야 한다. 성경은 인간과 피조물(우주) 전체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물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인간의 숭배대상(우상)도 아니고,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어떤 속성도 아니며, 단지 인간의 삶의 무대요 인간이 다스리고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또한 인간이 만든 세속문명(조형계) 요소와 각종 문화 행위에 있어서 이방 문화의 상징인 바벨탑과 바벨론 도시를 악의 총체로,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대한 모형을 선으로 인식시켜 왔다. 이러한 공간개념은 ‘교회’라는 개념으로 신약시대에 바뀌며, 교회는 세속문화권 속에서 세속문화 및 세속문명(조형계)과 싸우며 거룩함을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교회가 기독교 문화로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지 못할 때, 기독교 문화권이 이방 문화권에 흡수 소멸되어 버린 예를 우리는 소아시아 지역과 유럽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위 방향에 있어서 수직개념과 수평개념도 신약시대에 와서 교회 중심, 개인 중심으로 구심점이 이루어지며, 이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곳이 천국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다만, 공간적으로 예루살렘은 항상 세계사의 중심을 이루었고 구원 섭리와 세계선교의 방향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운명에 관해서 성경은 우주의 시작이 있고 끝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인간이 육체의 부활 후 마지막 심판을 통과해야 하고 오직 구원받는 성도들만이 영원한 천국에 살 것을 계시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이 예언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구원의 길인 교회공동체로 인도해야 하며, 세상 끝날까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에서 자연 에너지를 먹으며 육체적 생을 지속하되 영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도 반드시 먹고 살아야 한다. 동시에 바벨론 우상 문화와 세속적 악을 버리고 자연을 건전하게 잘 다스리고 관리해나가야 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82년 3월 목포대학교 공대 조경학과에 부임하여 지금까지 목포권, 호남권 국토조경, 그리고 한반도통일과 북한녹화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환경론에 입각한 개발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 결과, 돌산에 불과하던 유달산을 변모시키는 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었다. 즉, 유달산 일주도로 위로는 친환경디자인을 적용한 대대적 식수사업을 통해 녹화 보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일주도로 아래를 개발 균형론을 적용한 공원으로 조성하여 개나리 축제가 열리게 함으로써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오게 한 것이다. 20여 년 전, 고하도 신항만 건설 당시 국토부 설계에는 고하도 산들을 허물고 그것을 절토해서 매립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공청회에서의 공개 질의 등을 통해 친수 항만을 조성할 것과 아울러, 목포 8경 중 하나인 고하도의 산들을 절토하지 말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다른 곳에서 토사를 운반하여 항만매립공사를 하게 함으로써 녹지자원 보호에 노력했다. 기독교 환경론이란 자명하다.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먼저 인간의 탐욕을 채우는 개발 논리에 힘없이 말없이 난도질당하고 사라져가는 자연의 울부짖음에 먼저 귀 기울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손만대,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 국토 가꾸기에 앞장서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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