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떠나지 않았다.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려본 적이 결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이론 물리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설명하는 근본적인 법칙을 찾고자 하고, 또 다양한 이론들 사이를 헤집으며 어떤 이론을 적용하고 다른 이론을 비판하면서,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과학자로서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과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이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자연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믿어왔던 신앙 전통의 해석들은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을까? 혹시나 학문적 성과와 우리의 믿음들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 나는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과학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학자가 기적을 믿는다는 것은 말이 되는가? 과학자가, 특히 이론 물리학자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때때로 나는 의도적으로 내가 신앙인이 아니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신앙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 보았다는 말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솔직한 표현이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 말은 믿지 않는 나의 친구들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내가 내 연구와 삶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궁극적인 답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잠정적인’ 답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고는 생각한다.
첫째로, 이 세상은 그렇게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직 우리는 정합적이고 근본적인 자연법칙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가 결코 이 자연법칙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의 근본 법칙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의 인식의 한계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은 피하기 어렵다. 또한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다고 해도, 현재 우리가 보는 세상을 개연성 있게 설명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관찰하는 세상 너머의 어떤 것을 가정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우리가 성경의 ‘모든’ 부분, 전통적으로 믿어온 성경 해석의 ‘모든’ 부분을 고고학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것들은 현재의 최신 연구 성과들과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급소’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의 부활 사건이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실존했던 것이 확인된 증인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으며, 최초 목격자들의 증언도 확보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을 믿을 것인지 아닌지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그 증언을 믿지 않겠다면, 왜 그들이 그런 기록을 남겼는지에 대한 개연성 있는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부활의 증인’들의 증언을 “그들이 정말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라고 해석하는 것 말고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서만 이 세상을 살아왔다면, 이러한 것들을 질문조차 하지 않고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러한 잠정적인 답이 아니라 좀 더 선명한 답을 하며 살아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의 정체성을 가진 신앙인이 신앙의 질문들에 맞닥뜨렸을 때, 그래도 ‘여기까지는’ 고민해봤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몸부림도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 필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그 문제를 다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에 답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지식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지금 당장 그 모든 문제에 답할 수 없다고 해서 신앙의 본질이 흔들려야 할 정도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여유와 인내심을 가지고 정직하게 탐구해 나가면 그것으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두 ‘인격’으로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누구나 그러지 말라고 말릴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인격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두 개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과학자로서, 두 가지 영역에 속하여 살아가면서, 세상을 두 개의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하나의 인격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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