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몇 주 전에 한 부흥 집회에 참석했는데, 다양한 저술 및 강연 활동으로 섬기시는 30대 젊은 강사님이 모어랜드(James Porter Moreland)의 <과학, 과학주의, 그리고 기독교>라는 책을 해설하는 강연을 해 주셨다. 그분은 거기서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젊은 세대는 예전 세대처럼 일상생활에서 신앙의 능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지적하셨다. 그 이유는 젊은 세대가 천지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여기지 않고, 단지 신화나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지”라고 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후 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필자의 마음에 한 가지 불편함이 자라났다. “여러분은 정말 창세기 1장 1절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 믿습니까? 저는 이 세계가 6일 만에 창조되었다는 젊은 지구 창조론을 믿습니다.”
필자는 천문학자이고, 천문학 안의 다양한 세부 학문 중에서도 ‘우주론’(cosmology)이라고 하는 학문을 주로 연구한다. 우주론이란 이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서 시간에 따라 그 크기와 전체적인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하늘에 있는 별과 은하와 같은 천체를 바라보며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가 정설로 받아들이는 표준 우주론 및 천문학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빅뱅에서 시작한 후 약 137억 년 정도 흘렀고,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50억 년 전쯤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현대 과학은 완전무결하지 않고, 과학이 으레 그래왔듯 지금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 지식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바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137억 년이라고 하는 우주의 나이가 순식간에 6천 년으로 바뀔 정도로 우주론이 기반부터 완전히 흔들리는 일이 쉽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 역시 과학자로서, 앞서 소개한 우주론과 천문학의 정설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부흥 집회로 돌아가서, 필자의 마음이 불편해진 까닭은, 아마도 강사님의 말씀이 필자에게 이런 대화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님은 성경을 믿으십니까?” “네.”
“형제님은 창세기를 믿으십니까?” “네.”
“형제님은 온 우주와 지구, 모든 생물이 약 6천 년 전에 창조되었으며, 대략 144시간 동안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
“그렇다면 형제님은 창세기를, 성경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님의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물론 강사님이 필자를 대면해서 만난다고 해서, 필자를 이렇게 정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최근까지도 이런 종류의 대화를 많이 접했고, 그때마다 필자에게는 당혹감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필자라고 왜 모든 것을 선명하고 단순하게 믿고 싶지 않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과학자의 꿈을 진지하게 재점검한 시기를 보내고 얼마 뒤, 필자는 일본에서 번역된 젊은 지구 창조론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별과 같은 천체가 얼마나 순식간에 창조될 수 있는지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 책을 집중해 읽는 동안,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설명되는 것 같아, 솔직히 너무 신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책의 설명이 과학적인 정설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필자에게는 배신감이 몰려 왔다. 과연 하나님을 믿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런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걸까. 만약 하나님을 믿는 내 믿음이 저 책에 나온 주장에 근거하고 있었다면, 그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나는 하나님을 더 이상 믿으면 안 되는 것일까.
필자 주변에도 성경이 과학과 모순된다는 이유로, 혹은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져 왔던 주장이 틀렸다는 이유로, 신앙을 잃거나 신앙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사람이 여럿 있다. 필자는 필자의 우주론 연구가 궁극적으로는 신앙과 자연과학이 서로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연구를 계속할수록, 필자가 과학자로서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의 교회 공동체에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다가올지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교회 강단에서는 말씀을 선명하게 믿고 순종하라고 가르치는데, 필자의 이야기가 오히려 그 말씀(또는 그 말씀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의 선명성을 흐릿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생각해 본다. 오늘날, 일부 비지성주의자를 제외하고는 기독 공동체의 어느 누구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움직인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누군가의 신앙을 약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동설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루터를 포함한 신앙의 대선배들은 지동설이 여호수아 10장과 같은 성경 말씀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브루노(Giordano Bruno)와 같은 사람은 지동설의 아이디어를 너무 심하게 확장해서, 수많은 세상에 수많은 외계 생명이 살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할 정도였다. 즉 지동설은 그 당시에는 교회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될만 했던 위험한 이론이었고, 이것이 교회에서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필자 역시 필자가 잠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표준 우주론과 천문학이 우리 신앙에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창조 기사를 포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솔직히, 이 두 개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직 필자는 잘 모른다. 비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천국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그분께서 이것이 어떻게 말이 되는지 보여주시리라 믿는다. 그때까지는, 비록 마음속 어딘가에 미혹이 있을지언정, 이 두 가지가 언젠가는 조화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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