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구학에서는 인구의 변동을 출생, 이주, 사망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설명한다. 이 중 사망은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 있는 데 비해, 출산 및 혼인과 이주는 개인의 생애사에 걸친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인구 사건’(population ev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가의 인구정책은 출생과 이주를 주된 개입과 통치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들을 촉진 혹은 통제하여 적정한 인구 수를 확보하고자 한다.*
그런데 혼인과 출산, 이주는 단순히 현재의 삶의 조건이나 가치관의 문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어떠한 생애를 전망하느냐의 차원과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의 경우, 개인의 커리어, 양육과 교육, 주거, 노후 등의 전망을 모두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결정이다. 또한 이주의 경우,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과 연결되어 실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점에서 청년들의 저출산과 수도권 집중의 트렌드는 결국 개인의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가치관의 문제뿐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전망하며,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볼 때, 저출산의 트렌드와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하나의 악순환 고리를 이루고 있다. 고등교육기관과 대기업의 수도권 집중, 산업의 고도화로 인해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희소해지는 상황에서, 지방의 청년들은 출신 지역에서는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 나갈 만한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판단 아래, 높은 주거비와 취업 경쟁을 무릅쓰고 수도권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과밀화된 수도권에서 청년들은 주거비와 양육비의 부담으로 인해,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경력 단절 이후의 불투명한 전망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된다. 결혼과 출산으로 취업 전선을 이탈하면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육 환경을 위해 지방으로 이주하기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안정적인 기반을 물려받지 않은 이상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려 나갈 만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기에, 어쩔 수 없이 수도권에서 어떻게든 경력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리스크로 가득한 미래 앞에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유보하고, 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한국의 저출산 트렌드가 특히 심각한 이유는 수도권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극단적인 불균형의 상황 때문이다. 옆 나라 일본은 지방소멸론이 처음으로 제기된 나라이지만, 한국에 비하면 도쿄, 칸사이, 나고야의 삼대 대도시권과 각 권역별 거점도시가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층의 집적과 경쟁을 어느 정도 분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대학교육을 마친 후 자신의 고향이나 고향과 가까운 거점도시로 이주하려는 ‘지모토(地元, 고향) 지향’이 관찰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수도권을 제외하면 사실상 안정적인 경력을 위한 선택지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에, 극한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압박에 직접적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 때문에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으로 인한 지방의 인구 소멸과 수도권의 과밀화로 인한 저출산 트렌드의 심화라는 악순환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할 때, 단순히 출산에 대한 일시적 지원만으로는 현재의 인구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 나가고 미래의 삶과 커리어를 그려나갈 수 있는 토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청년들은 아무리 좋은 출산과 양육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선뜻 결혼과 출산, 육아를 선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구정책은 출산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성인기로의 이행 과정과 이후의 경력과 삶의 전망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자신의 삶의 터를 닦고, 미래를 설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결혼과 출산이 의무가 아닌 삶의 한 선택지가 되었다는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되,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해 나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봄직한 선택지가 되도록 출산과 양육 환경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지방소멸의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지방 인구대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귀농귀촌 정책은 어떻게든 젊은 청년들, 특히 젊은 부부와 ‘가임기’ 여성들을 이주시켜서, 출산 장려정책을 통해 인구 재생산력을 확보하려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청년 인구를 유치하기 위해 일회적인 프로젝트나 불안정한 일자리 사업을 남발하면서, 청년들을 일단 유입시키고 보자는 식의 정책이 많이 시행되어 왔다. 하지만 필자가 관찰해 온 바, 지방에 이주하는 청년들은 자신이 직접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삶의 모습을 설계하며 삶의 터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주하는 청년들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적은 수의 청년들이 유입되더라도 이들이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창업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고, 생활문화와 공동체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022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수치에 압도되어 출산율 자체를 제고하려는 단기적인 처방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큰 그림을 가지고 인구정책을 재설계해 나가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이라는 인구위기의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되, 그러한 인구변동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평가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달라진 인구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각주>
* 이성용, 2022, <통치과 생존의 인구학: 지피지기의 관점에서>, 해남.
** 이상림 외, 2022, <인구변동에 따른 사회변화 전망 및 대응체계 연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 박지환, 2023, “일본 지방청년의 진로선택시 성별에 따른 지역간 이동의 차이”, <일본비평>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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