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의미 있는 노년의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꾸려가려면 노년기 진입 이전에 좀 더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준비가 절실히 필요하다. 포르트만(Adolf Portmann)은 “평소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수 있다”라고 한다. 고대 철학자 세네카도 “자신의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서 자신의 진정한 계획을 50세나 60세로 미루어 놓고는, 이제 조금밖에 살지 못하는 때에 삶을 시작하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라고 도전한다. 성인기를 행복하게 보냈다 하더라도 노년기를 실패하면 인생을 충만하게 살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노인은 과거의 실수나 후회스러운 경험을 재조명(reflection)하여 구속(redeem)함으로써 현재 시기를 지혜롭고 의미있게 사용하려는 태도, 그리고 미래에 살아갈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종말론적인 시간관을 견지하면서 오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가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은퇴 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관심 영역을 발견하거나, 또는 현재 진력하여 활용하고 있는 직업 전문성을 은퇴 후에 어떠한 방식으로 변형시켜 사회생활에 접목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30대 후반부터 하나님께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하신 이후 지속적으로 성경 말씀과 관련된 서적을 숙독하고 실제적인 삶의 전 영역에 적용하는 경험을 토대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간 지역교회에서 대학생, 청년, 장년을 대상으로 세계관 훈련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학교수로 정년을 마친 이후 시간제(part-time) 봉직의로 근무하면서, ‘치주’ 전문의로서의 직업 전문성을 진료 현장에 접목하여 다차원적으로 진료 시너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직업 전문성의 유형 및 고용 형태와 관련성이 높기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 용이한 모델은 아니라 생각된다.
사회가 노인에게 거는 낮은 기대감으로 인해 노인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진정한 은퇴란, 1) 더 이상 명령하거나 지시하지 않는 것이고, 2) 권위를 행사하지 않으며 현실을 수용하는 일이다. ‘내려놓기’는 힘을 추구하는 의지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더 폭넓고 더 깊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퇴 후에 필자에게 내게 다가온 하워드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인생은 짧은 담요와 같다.
끌어당기면 발끝이 춥고,
밑으로 내리면 어깨가 싸늘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무릎을 구부려 쾌적한 밤을 보낸다.
은퇴 이후 맞이할 노년기를 대비하여,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에 진력할 새로운 영역을 중년기부터 탐구하여 은퇴 후에도 지속적으로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또는 중년기 왕성한 직업활동에서 활용해온 직업 전문성을 통상적인 은퇴 시점보다 장기간 연장하는 일도 가능하나, 이는 직업 특성과 매우 깊은 관련성이 있어서 자유업에 종사하는 전문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이라 하겠다. 하나의 변형으로서 직업 전문성을 유지하되 새로운 사회환경에 변형적으로 적용하는 방식도 있다. 이 세 가지 방식을 노년기에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추구하는 삶의 내용과 방향이 우선 하나님께, 이웃에게, 사회에, 그리고 후손들에게 어떤 의미(meaning)와 가치(value)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특히, 후손들에게 남겨줄 자양분이 풍성한 학문적·문화적 유산(legacy)이나 자원(resources) 같은 것을 말한다.
생계와 세속적 성공을 위해 내달리던 ‘자연적 삶’에서 ‘문화적 삶’으로의 전환, 즉 자신을 계발해서 꾸준히 진보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며, 직업 활동을 끝낸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삶의 방식을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의연해지고 인생 후반기를 우울하지 않고 행복하게 보내는 비결은 바로 왕성한 독서나 문화활동을 통해 교양 역량을 쌓는 일이다. 노인만의 느긋함, 넉넉함, 여유로움, 겸손과 품위, 그리고 성숙함이 자리하는 아름답고 새로운 삶인 것이다. 청춘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노년의 아름다움은 노력해야 비로소 이뤄지는 예술작품과도 같은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나이 들어서도 책을 가까이하면 기억력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정신은 계속해서 발전해갈 수 있기에, 사이토 다카시 교수도 책 읽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최근 출간된 도서 중 요한 하리(Johann Hari)의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과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은 지식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은 정보 폭식에 시달린 채 집중력을 상실하고 혼란스러운 얕은 사고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고발하면서, 수동적으로 보고 듣는 방식에서 능동적인 책 읽기로의 전환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특히, 현대교회의 특성상 개인 삶의 색깔이나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이 더욱 선명해지고 다양화되는 ‘초개인화’(Hyper Personalization)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한 몸’ 이루는 교회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소그룹을 다양화해 개성화된 성도들의 필요와 관심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일과 병행하여 지혜와 경험 많은 이들의 말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일은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이다. 지혜와 경험 많은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함께, 개인들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와 신앙 경험 역시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신앙 인격과 인생 경험에 기반한 노년기의 독서는 이러한 기독교 공동체의 절실한 수요에 부응하기에 최적화된 삶의 방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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