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를 전후하여 태어난 나의 세대는 전 세계가 유례없이 가까워진 세계화 시대를 살아왔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유례없이 질서와 규칙이 존중되고, 그로 인한 무역, 투자, 인적교류의 활성화 등으로 유익을 누릴 수 있던 시기였다. 우리나라 역시 1953년 한국전쟁 정전 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고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 세계화의 과실을 누렸다. 90년대 이래 우리가 보아온 세상은 냉전 종식 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용인한 평화의 시기였다.
비록 세계 곳곳에 갈등은 있었지만, 세계대전 수준의 전쟁은 없었다는 면에서 제한적이었고, UN, WTO와 같은 국제기구와 제도가 작동하여 이를 통제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세계는 점점 평화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시리아와 아프간 등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평화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불법 침공으로 촉발되어 북한군의 참전으로까지 이어졌고, 이는 한반도에서도 북한과 러시아가 한국과 미국에 대항하여 연대할 가능성을 열었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으로 연결되었던 냉전 시기와 비슷한 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한편,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스라엘의 무차별한 보복으로 참혹함이 더해졌고, 역내 확전의 위험까지 안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희생이 확인된 44,000여 명은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이러한 비극의 내막에는 세계화를 지탱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더는 그렇지 못하다는 중요한 변화가 자리한다. 냉전 이후 30여 년간 절대 강대국이었던 미국의 패권질서가 작동하던 규칙들, 90년대생들에게 세계화의 과실을 안긴 그 질서가 점점 빛을 잃고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미국은 상대적으로 꾸준히 힘이 쇠퇴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의 국력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로 인한 긴장은 ‘미·중 갈등’, ‘미·러 갈등’ 등의 주제로 흔히 다루어졌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에는 미국이 더는 자유무역 제도 등의 협력 구조를 지탱하지 않으면서 국제질서를 주도하지 않으려는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미국 주도했던 UN 등의 국제기구와 제도는 잘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자유무역 제도는 약화 되었으며, 세계 경제는 공급망 재편과 관세인상 등으로 급격히 블록화되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지금의 상황을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전 간기에 빗대기도 한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로서 살아가라는 성경 말씀을 붙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방법론적으로는 접근할 때 먼저 ‘비폭력주의 입장’과 ‘폭력도 인정하는 입장’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후자에는 다시 전쟁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성전론’(holy war theory),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하다고 보는 ‘정전론’(just war theory)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앞의 그 어떤 갈등도 ‘성전’이나 ‘정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비극은 단지 비폭력적 수단을 통한 갈등조정의 실패가 야기한 결과일 뿐이다.
갈등조정의 실패로 야기된 분쟁의 원인을 국제질서의 변동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나는 먼저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런 과정이 쌓여 평화의 시기를 살아가게 했던 질서와 규칙들이 제도로 계속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에 지지와 연대를 보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전쟁은 먼 곳의 일이 아니다. 비상계엄 사태가 시작된 지난 12월 3일부터 대통령이 탄핵 된 12월 14일까지 대한민국은 전쟁이 잠시 멈춘 정전국가로서 안보위기를 지나왔다. 위임받은 합법적 권력을 가지고 지켜주어야 할 대상인 국민을 향해 오히려 불법적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 그는 탄핵 과정에도 여전히 군통수권자였기에, 그 시기 한국이 불시에 공격을 받았다면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다행히 이 국가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이 보여준 대처는 지극히 화평케 하는 자들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이해하고 있는 기독교의 화평은 전쟁의 부재를 의미하는 평화 이상의 것이다. 단순히 갈등의 부재를 넘어 갈등 해결과 화합을 위한 능동적인 노력, 우리 국민이 이 탄핵국면에서 보여주었던 그 노력이 바로 화평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화평이 개인의 차원으로는 관계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고, 사회적 차원으로는 불의와 차별을 해결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려 노력하는 행동이며, 국가적 차원으로는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각자 주어진 일상의 자리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자기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는 것,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벌어지는 애통한 일들을 두고 기도하는 것, 나아가 평화를 작동하게 하는 규칙과 질서를 지지하는 데 연대를 보내는 것, 이렇게 우리 모두가 오늘 주어진 일상을 ‘화평케 하는 자’로 온전히 살아낼 수 있기를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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