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세기 이후의 전쟁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폭력성
<증오의 세기> / 니얼 퍼거슨 / 이현주 역 / 민음사 / 2010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증오의 세기>의 저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자 최고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저자는 1900년 이후 100년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세기였고,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고 규정한다.(28쪽)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인간이 일으킨 최대의 재앙이었고, 20세기의 수많은 전쟁으로 생겨난 사망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20세기 이후 전쟁에 의한 극단적 폭력은 무장한 군인들의 충돌에 국한되지 않았고, 2차 세계 대전의 총 사망자 중 적어도 절반이 민간인이었다. 특정 지역을 초토화하는 대규모 공습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희생되었고,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도 침략자나 심지어 이웃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대량 학살의 규모를 설명하려면 진부한 군사적 분석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인종 갈등’, ‘경제적 변동성’, ‘제국의 쇠퇴’를 20세기 이후의 전쟁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폭력성의 원인으로 든다.(35〜36쪽)
‘인종 갈등’과 관련하여, 인종이 뒤섞인 이주 지역의 ‘분쟁지’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요동침으로써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더욱이, 20세기 내내 인간은 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인종이 별개의 종(種)인 양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일부 집단을 ‘인간 이하’로 분류했다. 유전적으로는 인종 간의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거기에 중요성을 부여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유사한 데도 다른 인종은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20세기 최악의 전쟁들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 때문에 일어났다.(39쪽) 특히, ‘인종 무질서’에 대한 반감이 극단적 형태를 띠면서 차별, 분리, 박해, 추방 등으로 이어졌고, 결국에 인종 청소가 시도되었다. 인종에 대한 그런 세계관이 나치 독일의 기초를 이루었고,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는 그 극단적인 사례였다.(50쪽)
‘경제적 변동성’이란 경제 성장률, 가격, 금리, 고용변화의 빈도와 진폭, 그리고 이와 관련된 온갖 사회적 압력과 긴장을 의미한다. 경제적 변동이 심했던 시기에는 사회적·정치적 긴장과 압박이 강해졌고, 경제적 변동이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경향도 있었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던 경제적 상황이 1차 세계 대전 시기와 그 이후에 급격히 바뀌었다. 정부의 역할이 커졌고 금본위제로 알려진 고정 환율제가 무너졌다. 특히, 보호 관세나 적자 재정, 강압적인 징세, 변동환율제처럼 양차 세계 대전 사이에 실시된 여러 실험은 경제적 변동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57〜60쪽)
‘제국의 쇠퇴’란 20세기 초에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 제국들이 해체되면서 유럽 제국들이 새로 등장한 터키, 러시아, 일본, 독일 등의 제국으로부터 받은 위협을 말한다. 20세기에 탄생한 제국들은 상대적으로 오래가지 못했음에도, 파괴와 살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 제국들이 유례없이 중앙 집권적인 권력과 경제적 통제 및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제국들은 무력 사용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적·법적 제한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존 사회 구조 대신 새로운 계층 구조를 형성하는 데 집착했다. 무엇보다 잔인함을 미덕으로 삼은 그 제국들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적국의 군인뿐만 아니라 적국의 모든 국민을 공격하려 들었다.(64쪽)
저자는 20세기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망자가 조직적 폭력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면서, 20세기가 두 가지 면에서 독특했다고 지적한다. 첫째, 20세기에 발전한 서양 국가들이 치른 전쟁의 종류가 변했다. 유럽 역사를 보면, 전쟁에 대한 기술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직적 폭력 때문에 발생한 사망률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했다. 가끔 대량 학살이 벌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군대의 관행이 되지는 않았다. 둘째, 겉으로 보기에 문명화된 사회의 지도자들이 이웃 나라 국민에게 가장 원시적인 살해 본능을 폭발시켰는데, 이는 여전히 20세기의 역설로 남아 있다. 특히, 전쟁에서 잔악함과 섬세한 기술이 결합되었는데, 이것이 서로를 무참히 살육한 세계 대전이 보여준 특징이었다.(834〜840쪽)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 경제, 사회, 과학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한 시대인 21세기가 어떻게 살육의 장으로 변했는지 분석한다. 특히,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타자 혐오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정치적·경제적 요인이 결합하여 인간이 전쟁에 열중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적 변동성’이 어떻게 20세기 이후의 전쟁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폭력성의 원인이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이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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