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이상규 저 / SFC / 2021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2021)는 오랫동안 고려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현재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있는 이상규 박사의 저서이다. 저자는 이 책으로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회사 속 흐름을 밀도 있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신학생과 일반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매우 유익한 ‘기독교 평화론 입문서’를 선물했다. 구성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주제들과 내용의 개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장과 3장은 성경의 전쟁과 평화의 개념 분석을 토대로 한 정리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주제와 관련해서 성경에 통일된 견해는 없었다. 구약 130건의 전쟁 기록은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진멸을 명한 사건들조차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주권적 통치 행위로 이해하고, 어떤 이는 이것이 실제 발생한 사건들이 아니라 영적 의미의 기술일 뿐이라고 하며, 또 어떤 이는 신약 중심적 평화주의 해석을 위해 구약의 기록에 대한 해석을 유보하는 쪽으로 이해해 왔다.(22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 핵심이다. 예수는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다수가 이를 따르는 평화 지향적 공동체였다.(51면).
4장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합법적 종교가 되기 전, 초기 기독교 약 300년 동안을 다룬다. 이 시기에 대해 학자들은 교회가 반전주의적, 평화 지향적 공동체였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55면). 즉 초기 기독교의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군 복무나 살상, 폭력, 전쟁의 참여에 반대하는 ‘평화주의’(pacifism) 입장이 다수였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시기 교부들, 즉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폴리카르푸스, 아테나고라스,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히폴리투스 등의 입장을 통해서 확인된다.
5장과 6장은 국가적 공인과 국교화(381년)가 이루어진 소위 ‘콘스탄티누스 기독교’ 시대의 대세 이론의 배경과 흐름을 정리한다. 4세기 이후, 교회는 국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되었고, 국가의 과제를 종교적으로 뒷받침해야 했음에 주목한다.(84면). 따라서 초기 기독교가 견지했던 ‘평화주의’는 퇴조하고 영구적 세계평화를 위한 조항이 ‘정당전쟁론’(just war theory)이 대두한다.(84면). 이것은 신앙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은 정당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인데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에 의해 체계화된 입장이었다. 이 ‘정당전쟁론’은 중세시대의 십자군 전쟁으로 대표되는 성전론(holy war theory)으로까지 발전한다, 놀랍게도 유명한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조차 “그리스도의 군사는 편안한 마음으로 전쟁에서 살인할 수 있고,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라며 살육으로 점철된 십자군 참여를 독려했다는 것이다.(104면).
7장과 8장은 종교개혁기의 전쟁과 평화 담론에 대한 정리이다. 관료적(Magisterrial) 종교개혁자들인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은 모두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계승한 정당전쟁론자들이었다. 반면에 기독교의 로마 국교화 이전의 다수 교부들의 입장을 계승하려 했던, 급진적/근원적(Radical) 종교개혁자들, 즉 재세례파의 메노 시몬스, 콘라드 그레벨, 피터 리드만, 후프마이어 등은 모두가 평화주의자들이었다. 그 결과물인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서’(1527)의 6항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이유로도 칼을 사용할 수 없고 따라서 군 복무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72면).
9장과 10장은 계몽주의 시대 이래 평화론이다. 17세기 그로티우스는 전쟁이 오직 정의와 평화의 도구여야 한다는 신중한 ‘정당전쟁론’ 입장, 모라비안 교육가 코메니우스와 퀘이커 북미 개척자 윌리엄 펜은 산상수훈 가르침을 따른 평화주의 입장이었다. 18세기 루소는 공화주의 체제로 평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믿었고, 칸트는 영구적 세계평화를 위한 조항, 즉 ‘공화제’, ‘자유 국가들의 연맹’,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된 세계 시민법’을 제시했다. 또 평화주의 공동체로 ‘퀘이커’와 독일의 ‘형제교회’도 있었다. 저자는 19세기 톨스토이, 간디, 안중근의 평화론을 거쳐, 특별히 20세기 라인홀드 니버와 존 요더의 평화론을 주목했다. 전자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인간의 자기 중심성으로 인하여 이상적 평화주의의 한계를 직시한 ‘현실적 평화주의’, 후자의 평화주의는 예수의 산상수훈 가르침과 십자가 죽음에서 확인되는 비폭력 제자도를 강조한 것이었다.
11장은 한국 현대사 평화론에 대한 역사적 정리이다. 6.25와 월남전을 전쟁의 큰 상처를 남겼고, 남북 간 위기의 원인을 분단에서 찾음으로써 1980년대 민족통일운동을 낳았다. 진보진영의 자주통일론과 보수진영의 반공통일론, 함석헌으로 상징되는 반전 평화주의가 공존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남북 간의 군사적 대립이 지속 되어 온 한반도에서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아닌 ‘예수의 평화’(Pax Christi)를 강력히 제안한다.(272면). 다만 이것의 이상주의적 한계를 고려하여 한국교회의 북한 사회의 변화를 위한 기도의 역할을 요청한다.
이로써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쟁과 평화에 관한 성경의 주요 개념 분석, 그리고 교회사 속 다양한 입장의 배경과 흐름을 입체적으로 탁월하게 제공하고 있다. ‘평화주의’, ‘정당전쟁론’, '성전론', ‘기독교 현실주의’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중 어느 것도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전쟁으로는 근본적인 평화를 담보할 수 없으며, 결국 평화를 위한 전쟁은 없다.”(284면). 오직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Peacemaker)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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