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만난 유대인의 모습을 바탕으로 유대인을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매우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서, 각자가 경험한 유대인의 모습은 서로 다르며 일관적이지 않다. 더운 여름에도 검은 양복과 모자를 쓰는 초정통파 유대인,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머리에 키파(kippa)를 쓰고 유대 규례를 지키는 종교적 유대인,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비종교적 유대인 등 유대인의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반면, 이러한 다양함 가운데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안식일’이다.
이스라엘에서 오래 거주하며 가장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안식일이었다. 필자의 이스라엘 생활 초기에는 안식일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대중교통도 운행하지 않고 가게도 다 닫았는데, 이들은 과연 집에서 무엇을 하길래 매주 이렇게 같은 시간을 반복하는 것인가 의문이었다. 심지어 종교인 가정에서는 TV 시청도 하지 않는다. 금요일 오전이면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인 안식일을 준비하는 분주한 움직임으로 거리가 북적인다. 사람들은 안식일을 위해 빵과 꽃을 사고,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안식일을 보내기 위해 장을 본다. 오후가 되면 상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모두가 집으로 향하느라 바쁘다. 군인들도 집에 가기 위해서 3시경이면 끊기는 고속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른다. 대중교통은 끊긴다고 해도 밖에 다니는 것이 불법이 아닌데, 마치 통금이라도 있는 듯이 모두 서둘러서 집으로 간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샤밧 샬롬’(평화로운 안식일)이라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거리는 평화롭다 못해 적막하지만, 평소에 조용한 옆집 어르신 댁에서는 손주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에 집에서 무엇을 하길래 이들은 때마다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일까?
흔히 안식일이라고 하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날로 생각하지만, 본래 그 의미는 하나님과 만남에 집중하는 데 있다. 안식일은 단지 초를 켜고 고요히 있는 시간이 아니다. 초를 밝히는 순간, 안식일이라는 중요한 삶의 루틴이 시작된다. 가족들은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안식일 의식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재정립한다. 로젠츠바이크(F. Rosenzweig)와 헤셸(A. Heschel)에 따르면, 안식일은 단순히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는 거룩한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창조물의 모습이 되기 위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서 초기화(reset)하는 과정이며, 창조물로서 본연의 모습을 찾는 날이다.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시작으로 가족, 이웃, 그리고 세상과 관계를 회복하는 날로, 안식일의 실천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가정이며 유대인 가정교육의 시작이다. 설령 시험을 앞두었거나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키면서 회복과 공감이라는 가정교육의 핵심을 실천한다. 이것이 유대인 가정교육이 그리스도인에게 줄 수 있는 시사점이다.
유대인마다 종교성에 차이가 있어서 안식일 의례가 다를 수 있는데, 유대인의 ‘안식일 식사’(Shabbat Dinner)에서 공통된 핵심은 축복과 식사다. 안식일을 축복하고, 음식을 축복하고,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의 주제는 가정마다, 절기마다 다르지만, 그 시기에 해당하는 유대 절기에 관한 성경 구절을 함께 읽고, 관련된 전통, 문화, 삶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해마다 같은 루틴을 반복하니까, 굳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읽고, 그에 관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러한 반복된 루틴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예를 들어, 유월절을 시작하는 안식일이라면, 1년 전, 10년 전, 자녀가 태어나기 전 등 출애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제낙(M. Rosenak)에 의하면 유대인의 가정교육은 성경에 나온 유월절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동적인 사건으로 변하게끔 한다. 이러한 역동성이 있기에 안식일이라는 루틴에서 나누게 될 가족 간 대화 주제는 다양하다. 먼저 일주일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좋은 이야기만 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정치와 같이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어렵고 무거운 얘기도 오간다. 삶에 대한 격려와 조언 등은 부모만의 몫이 아니다. 어린 미성년 자녀도 부모 사업에 관해 조언할 수 있고, 때로는 자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의 행동에 관해 질문하고 조언하기도 한다.
유대인의 가정교육은 안식일이라는 성경적 루틴에서 과거와 현재를, 부모와 자녀를, 성경과 현실을 연결하여, 가족 구성원 간 공감대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회복을 경험하는 공동체적이며 경험적인 교육이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유대인의 가정교육은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의 가정교육이 기독교에 주는 시사점은 세상이 원하는 효율적인 삶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성경적 루틴을 택했다는 점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효율적으로 지키는 루틴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가 함께 지키는 성경적 루틴이므로, 성경이 곧 그들 가족의 경험이 되고,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 민족의 경험이 되어 그들을 견고하게 한다. 이것이 유대인 교육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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