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간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칸트)
산업화되고 다변화된 세상은 교육도 분업화시켰다. 공적 교육은 학교가 맡고 가치 교육은 교회 같은 종교 기관이 맡는 식이다. 공교육 학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안학교나 홈스쿨을 선택하기도 한다. 홈스쿨 관련 일들을 하다보니 홈스쿨에 지나친 환상을 품고 찾아오는 분들이 가끔 있다. 이분들에게 들려줄 자작시 한 편이 있다.
<대한민국 교육백서>
공교육은 공허하고 / 사교육은 사기치고
대안학교는 대안이 없고 / 홈스쿨링은 환상에 빠져
전문가는 미래를 모르고 / 부모들은 자녀를 모른다
자녀들은 유튜브가 키우고 / 유튜브는 조회수가 왕이다
교회의 신앙교육은 다를까? 신앙이나 신학의 전문가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주일에 1시간 확보하기도 어렵고 그 시간에 집중을 시키는 것도 어렵다. 교육한 것의 실천과 결과를 살피는 것은 더 어렵다.
이쯤에서 가정교육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학교나 교회가 가정과 잘 협력해야 한다거나, 가정의 인성교육이 문제라는 식의 피상적인 답변은 소용이 없다. 원인은 파편화된 교육 그 자체에 있다. 가정교육이 어떤 부분을 담당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 자체에 문제가 있다. 교육 기능이 학교와 교회와 가정으로 분리되고, 심지어 가정이 교육 기능 자체를 잃어버리기까지 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볼 때 근래 짧은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분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총체적 교육이 분열되고 약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의 근원을 밝히는 책인 <창세기>를 보면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최초의 사회 제도다. 또한 최초의 직접적인 사회적 교육 역시 가정의 신앙교육 형태로 설명되고 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keep the way of the LORD, to do righteousness and justice)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이 말씀은 가정교육이, 신앙교육이, 원래의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원래의 가정교육은 가정예배 시간표에 국한된 교육이 아니다. 여호와의 도(진리)에서 시작하여 공의와 정의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통합교육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성취될 구속사까지 연결된 교육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통합과 연결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세계관 교육이요 세계관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교육의 공간’으로서의 가정이다. 교실과는 다른 통합적인 ‘물리적 공간’이다. 학습자의 준비와 안정과 자율성을 이끌어내는 ‘정서적 공간’이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친밀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학습 내용으로 행동하는 ‘실천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교육의 큰 문제는 통합성과 실천성을 상실하고 삶의 현장과 괴리된 것이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정은 삶이 배제될 수 없다. 책상과 밥상이 함께 있고 양복과 잠옷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예배의 신앙이 설거지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신앙의 실체가 금방 발각된다. <천로역정>에서 말뿐인 떠벌이 신자의 민낯이 고발되는 것처럼 말이다.
“신앙이요? 저 사람 마음엔 신앙이 없어요. 집에도, 행실에도 신앙이 없어요. 오직 혓바닥에만 있지요… 밖에서는 성자, 집에서는 악마라고 한답니다. 불쌍한 그 집 식구들은 다 알죠.”
가정교육은 고착화된 이론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겪고 있는 상황과 마음이 드러날 때,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함께 울어주는 눈물과 말없이 차려지는 밥상이 그 어떤 진단과 처방 이론도 뛰어넘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가정교육은 개인적 성찰과 사회적 변혁의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빠와 엄마와 자녀가 한 몸이 되어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적 교육이 된다.
교실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효율적인 공간일 수 있지만, 삶의 복잡함, 관계의 밀도, 가치의 실천이 온전히 일어나는 공간은 아니다. 특정한 교육 제도와 교육 방식의 선택에 해답이 있다고 믿으면 교육의 혼란은 끝나지 않는다. 공교육 대신 대안학교나 홈스쿨을 선택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교육을 어디서 받는가?”가 아니라, “배움과 실천이 단절되지 않는 삶의 공간은 어디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가정은 진정한 ‘신앙’ ‘생활’의 공간이다. 교실 중심 교육의 한계를 넘는 통합적인 교육의 공간이다. 참된 교육을 회복하고 싶다면 그 시작은 잃어버린 원래의 가정교육에서 배우는 것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그렇게 가르쳤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바로 서면 올바른 길이 열린다. 부모를 섬기고 겸손히 행하는 것은 인간다운 인간들의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다.”(<논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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