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족히 30년 전 겨울 언저리. 고향 집 근처 여전도회관에서 기독교학문연구회 학술 발표회를 한다는 소식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에게 교수님들의 발표를 들을 수 있는 끝자리가 허락되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니 연구와 삶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른다는 발표자 교수님의 한 문장 고백이 내 인상에 남았다. 집에서 매월 배달받은 가제본 소식지는 얇은 분량만큼이나 아쉽지만 반가운 글 손님이었는데, 선배 학자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어느새 <신앙과 학문> 학술지가 되어 서론이 무성했던 지면은 결실을 맺었다.
학부 1학년 여름방학. 나는 한 선교단체에서 찬양, 예배, 기도를 통한 성령 충만을 배우고 경험하는 수련회에 참석했고, 선택 주제 강좌에서 미들톤(Richard Middleton)과 왈쉬(Brian J. Walsh)의 <그리스도인의 비전>도 만났다. 학과의 선후배로 구성된 학술 및 기독 모임에서 학문과 신앙은 나의 독서와 사유의 중심이었다. 유럽의 종교개혁과 근현대사의 중심 독일문화와 독어독문학은 내가 믿음의 눈과 성경의 말씀을 통해 이해하고 향유하기에 유용했다. 덕분에 나는 성경을 모르고 신앙이 없으면 풀리지 않는 독일 문학의 명작, 노벨문학상 수상작에서 유영하는 기회를 선물로 받았다. 이는 주님 주신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스물 서넛에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은 아니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알았고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였다.
나는 독일문학과 문예학 강의를 들으며 작품과 문학사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수강 학생들에게 도울 때가 있었지만, 나의 직업은 의심의 여지 없이 취업을 통한 경제생활이라 믿었다. 공부를 직업으로 삼아서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시도는 적어도 해선 안 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학자가 되기 위한 능력도 없었을뿐더러 막연하고 요원한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하면서 일과 후 경영대학원을 다녀 제대 후 취업하는 계획을 세웠다. 낙방했다. 비록 몇 개월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소속 없는 청춘은 허전하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성령께서 시편 23편 5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씀으로 나에게 은혜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하셨고 지난 대학 4년 기간에 대해 깊은 감동으로 감사하는 순간을 마련해 주셨다.
나의 경우 다시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은 오직 대학원 진학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바로 시험을 다시 봐서 입대하리라 다짐하고 입학했다. 그러나 또, 교회에서 신앙생활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학업에 빠져들었다. 몇 년이 지나서 비로소 공군 장교로 근무를 했고 일과 후 경영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에서 독일 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내 나이 29세이던 2004년 2월 제대를 했고 한 달 후 3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교육과 연구의 삶이 이어졌고 결코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결됐고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한국과 미국이 FTA 자유무역협정을 최종 타결하였다. 이단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교주 정명석이 체포, 구속되었다. 중동에서 1차 가자 전쟁이 일어났다. 아이티에서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다. 북한에서 장성택이 처형됐다. 인천과 제주 노선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신경숙 작가와 <창작과 비평>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북한이 5차 핵실험에서 핵탄두 폭발 시험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었고 구속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집단 감염이 지속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K-POP 여성 걸그룹 뉴진스가 골든디스크어워즈 신인상을 수상했다. 북한 일가족 9명이 목선을 타고 남한으로 귀순했고, 한국에서 개 식용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한국의 방산 기업들이 폴란드 정부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20년 세월이 지나는 중에, 독일 뮌헨과 베를린에 연수를 다녀왔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작은 보금자리를 함께 꾸렸고, 딸을 선물 받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강의를 다녔고 논문 게재를 쉬지 않았다. 아들도 선물로 받았고, 가족과 함께 창원에 내려와 경남대에서 조교수로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제주대에서 교수로 승진하였다.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약하고 가늘지만, 줄곧 이어온 신앙과 학문의 연결은 작지만 나에게 소중한 선물로 돌아왔다. 2010년 전후 동역회에서 활기차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기독미디어아카데미 사역을 통해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의 꽃을 피우고 사람을 키우는 결실을 맺었고, 지방 대학교수로 있었음에도 동역회를 섬기고 가신 여러 간사님 덕분에 기독교학문연구회 총무를 다년간 할 수 있었다. 구약 <에스더>를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으로 개발해보고픈 꿈도 논문 작성으로 꾸어보았고, 기독교 철학자 폴 리쾨르의 은유와 이야기 개념은 나의 ‘이야기로 치유하기’ 연구에 든든한 근거가 되었고, 세계문학전집 목록에 있는 독일 시적 사실주의 대표작 <에피 브리스트>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용서로 그 내용을 뒤바꿔서 보는 힘도 얻을 수 있었다.
개인, 가정, 단체, 국가든 50년 세월을 보내면서 희로애락 없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가능하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라는 이름이 두 단체가 합하던 시기나 지금이나 좀 길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 목적과 성격을 정확하고 온전히 담은 네 단어라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더 와닿는다. 앞에서 나열한 세상 풍파처럼 크고 작은 일들이 동역회에 몰아쳐도 ‘신앙과 학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명을 잊거나 이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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