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간 첫날, 주님의 믿게 해주시는 은혜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겪은 여러 상처로 인해 들은 대로 믿는 아이와 같은 믿음은 점점 옅어졌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삶에 대한 냉소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 상태 그대로 대학에 올라갔고, 교회에 가지 않으면 눈치 보이는 상황도 없겠다, 믿지 않은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주일성수에 대한 부담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2시 예배가 있었기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이유만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교회의 수련회에서 다시 한번 주님을 만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받고 영혼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고등학생 시절,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은 소설이었다. 자습이 강제되는 시간에 칸막이에 숨어서 읽은 소설은 평범한 로맨스 코미디 소설이었으나 가슴이 울릴 만큼 재미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이 있다니, 재미있는 글로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니. 그것을 느낀 날부터 나의 꿈은 작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했고, 매년 열리는 출판사 공모전에 일 년에 하나씩 총 세 작품을 출품했다. 대학 전공을 미디어커뮤니케이션으로 선택한 것도 쓰고자 하는 소설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으니, 나아가는 모든 길이 작가에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고, 졸업 유예까지 해가며 작품을 준비했으나 제적 직전까지도 데뷔하지 못했다. 졸업 이후 아르바이트 정도만 할 뿐 특별한 직장 없이 글만 쓰던 시간 끝에, 전업 작가의 꿈은 미뤄두고 일자리를 구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인턴이나 자격증 등으로 스펙을 쌓을 때 글만 쓰던 나는 구직 활동에 매우 불리한 입장이었으나,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방식으로 취직이 되었다. 교회에 행사 공간이 부족하여 온누리교회 공간을 빌리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인연이 이어져 온누리교회 산하의 사단법인에서 간사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졸업하고 시간이 꽤 지날 때까지 사회생활 경험도, 적절한 수입도 없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최적의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취업을 하지만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이곳에 들어가면 왠지 평생 간사 일만 하며 살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원인 모를 불안감에 기뻐해야 할 취업의 순간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만 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을 교회의 셀 모임에서 나누었더니, 셀 리더께서 부드럽지만 따끔한 내용으로 충고를 해주었다. 감사해야 마땅한 상황이고, 감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들은 나는 오랜 시간을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설교 때마다 감사에 대해 들어왔음에도, 감사해야 마땅한 순간마저도 감사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마음을 고쳐먹은 나는 감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하고 간사 자리를 허락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모든 조건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딱 좋은 일자리였다. 우선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낸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타입인 나에게는 상당히 쾌적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 3일 근무에 나의 편의를 봐주셔서 수요일은 근무하지 않는다. 그 덕에 일반 직장을 다니는 다른 지체들은 할 수 없는 수요 점심 예배 찬양 인도를 섬길 수 있다. 오가는 시간이 길긴 하지만 지하철 한 번에 갈 수 있고, 근무 시간에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 수도 있다. 이렇게나 감사할 것이 많은데,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나의 계획에 눈이 가로막혀 불평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최근에 일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다면 이사님들과의 소통 문제다. 법인의 운영을 담당하시는 이사님들은 나와 내 바로 위의 사무국장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장로님이시다. 일하면서 가장 많이 소통을 하게 되는 대표 이사님은 무려 여든이 넘으셨고, 바로 위의 사무국장님도 어머니와 동년배이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해가 생기는 일도 많고, 일의 방법 등에서 인식 차이가 발견되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말씀으로 비춰보니,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주변의 직장인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래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라고 한다. 원래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그것을 통해 겸손과 처세를 배워야 하는데, 사회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모범이 되는 장로님들 밑에서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 아닌가.
내가 일하는 법인은 저출산 문제, 결혼 문제를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렇구나’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기적인 나를 아시고, 사회적인 일을 하는 사단법인에서 일하게 하시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의 계획이 놀랍다. 앞으로도 작가의 꿈에 계속 도전하면서 일에도 최선을 다할 텐데, 마주하는 모든 상황에 주님께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허락하신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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