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렘브란트의 <독서하는 노부(老夫)>(Old Woman Reading, 1631)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과연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주인공을 밝히는 것이 작품해석의 관건이 된다.
주인공에 대해서 크게 선지자 안나라는 견해와 렘브란트의 어머니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전자는 신약에 등장하는 여선지자 안나라는 견해인데 이 주장을 편 사람은 미술사학자 튐펠(C. Tümpel)이다. 그 근거로 튐펠은 렘브란트의 제자 얀 조리스 반 블리트(Jan van Vliet)가 제작한, 이 유화를 빼닮은 <여선지자>로 불리는 판화를 제시하였다. 안나는 주야로 성전에 머물며 기도하는 선지자였다(눅 2:37). 이 그림의 인물이 선지자 안나라면 배경에 성전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이 의견은 설득력이 부족한 편이다.
후자의 견해는 렘브란트의 모친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1836년 네덜란드 미술 연구가 스미스(J. Smith)가 제안한 것으로 그 근거로 같은 시기에 그의 제자들도 화가의 모친을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실제로 1628년에서 1631년까지 렘브란트에게 수학하였던 헤라드 다우(Gerard Dou)는 스승의 모친을 그린 바 있다. <독서하는 노부>(1631-1632)라는 작품은 렘브란트의 그림과 유사하다. 렘브란트가 같은 해에 제작한 에칭 <동양식 두건을 쓴 화가의 어머니>(1631), <테이블에 앉은 화가의 어머니>(1631)도 렘브란트의 어머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렘브란트, <독서하는 노부>, 판넬에 유채. 59.8 x 47.7cm,1631. 라익스뮤지엄 소장
렘브란트의 어머니 넬트헌 윌렘스르드(Neeltgen Willemsdr, 1568-1640년)는 노르베이크(Noordwijk)에서 태어나 라이덴으로 이주, 제분업자 하르멘 헤리츠 반 레인(Harmen Gerritsz van Rijn)과 만나 1589년 개혁된 피터스케르크(Pieterskerk)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림을 제작할 당시 그녀는 63세였으며,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기 위해 만난 공증인에 따르면 “그녀의 나이를 고려할 때 상당히 건강하고 서 있을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으며 기억과 모든 감각과 능력을 유지하는 상태였다”라고 한다.
그녀는 믿음의 집안 출신이었으며, 어머니에게서 성경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렘브란트는 어머니에게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그녀를 신실한 신앙인으로 그린 데서도 추정할 수 있다. 노모는 성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오른 손으로 하나둘 짚어가면서 성경을 읽는 중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필자는 모종의 친근감을 느꼈다. 렘브란트의 어머니를 보면서 성경을 읽고 필사하시던 나의 어머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정숙 권사님이 작성한 성경 필사 노트가 여러 권 있는데 그중 한 권을 주셔서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교회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셨고 교인의 기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즐거움과 위로를 함께 나누셨다. 교회가 그분의 집이고 가정은 숙소로 비추어져 투덜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기억에 남은 것은 가정에서 보여주신 모습이었다. 집안에 풍랑이 여러 번 찾아왔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망연자실하기보다 주님을 의뢰하며 위기와 시련을 이겨오셨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은 삶의 위기를 헤쳐 가는 비결이자 능력의 원천이었다. 사계절 거르지 않고 교회의 새벽기도에 나가 주님께 형편을 아뢰고 얼마나 눈물을 뿌리셨을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네 남매를 사랑과 온유로 대하셨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치매로 기억력이 크게 감퇴해지셨다. 아니, 거의 잃어버리셨다. 그래서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내가 막내아들임을 밝히고 나서야 겨우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조금 뒤에는 ‘네가 누구냐?’라고 재차 물으신다. 헤어질 때면 할아버지가 인근에 살고 계시니 인사드리고 가라고 하시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난 알고 있다. 반세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분이다. 조부가 생전에 어머니를 총애하셨는데 시간이 흘렀어도 그분만큼은 또렷이 기억하시는 것이다. 사랑과 기억의 관계는 비례하는가 보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보니 앙상한 뼈와 핏줄이 가감 없이 느껴졌는데 마치 마른 가지를 만질 때의 촉감과 같았다. 97세의 어머니도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의 화살을 미처 피해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간다. 초상화라면 응당 주인공인 어머니가 강조되어야 하나 이 그림은 ‘인물’보다는 ‘성경’에 주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점은 통상 초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점이며, 만일 이 그림이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이었다면 의뢰자로부터 엄청 핀잔을 듣거나 심할 경우 주문 취소마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림을 통해 렘브란트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시 119:105)임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리라.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본다면 우리는 믿음의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연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이 넬트헌과 렘브란트 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를 그리려고 붓을 들었을 때 렘브란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돌보아 주시고 신앙적으로 키워주신 분을 향한 깊은 감사와 존경심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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