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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선생님 회고록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에 대하여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 / 손봉호 / 우리학교 / 2025
손봉호 선생님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한동대학교로 향하던 KTX 열차 안에서 처음 접했다. 송인수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였다. 곧바로 알라딘에 다섯 권을 주문했다. 평소 선생님의 성품을 아는 나로서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전혀 기대하지 못했기에 출간 소식은 더욱 반가웠다.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라는 제목은 선생님께서 직접 정하신 제목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선생님의 아드님 손화철 교수를 보자마자 물었다. 출판을 주도한 송인수 선생님의 열정에 선생님께서 결국 뜻을 굽히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선생님을 1973년 3월 초, 그러니까 52년 전, 외대 네덜란드어과 학과 사무실에서 처음 뵈었다. 오랜 시간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뵈며 느낀 인상을 한마디로 말해 보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일관성’이라고 말하겠다. 선생님의 말과 글,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하시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주장하시는 내용, 인용하시는 저자와 책들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나 같은 말씀만 되풀이하신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지자적 비관주의’를 말씀하셨지만, 이후에는 ‘도덕적 선구자론’, ‘이기적 합리주의’, ‘소극적 공리주의’, ‘피해자 중심 윤리’ 등으로 발전시켜 나가셨다. 부록에 실린 기부에 관한 글을 통해 선생님의 사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선생님은 평생 대학과 교회와 사회, 이 세 영역을 넘나들며 가르치고, 연구하고, 설교하고, 시민운동을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교육자요, 학자이셨다. 겉으로는 학문을 대단치 않게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셨지만 파스칼(Pascal)이 말한 “철학을 조롱하는 것이 진정으로 철학하는 것이다”(Se moquer de la philosophie, c’est vraiment philosopher)라는 말을 실천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선생님의 박사 논문을 39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읽었다. 나에게는 후설(Husserl)과 칸트(Kant) 철학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 책이지만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는 저술이었다. 강의 역시 언제나 명료했다. 선생님은 대학 강의 못지않게 교회 설교자로도 많은 시간을 쓰셨다. 설교하기 위해 준비한 노트가 강의 노트보다 몇십 배는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경실련, 기윤실, 공선협은 물론, 환경, 복지, 기부 단체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단체에 참여하시며 평생을 헌신하셨다. 대학, 교회, 사회라는 세 영역에서의 활동은 마치 세 봉우리의 산을 짊어지고 가시는 삶이었기에, 회고록 제목이 된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삶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 김원숙 화백의 통찰도 대단하다.
회고록을 읽으면서 나는 손봉호 선생님이 단순한 학자의 길만이 아닌,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삶을 살아오신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기독교 신앙이 토대가 되었던 것 외에, 가난했던 유년 시절, 그럼에도 도둑이 없던 시골 마을 생활, 도장을 새겨주던 선생님의 사랑, 아이를 잃고 슬퍼한 여인 얘기를 듣고는 새벽에 홀로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선생님은 이것을 ‘사랑의 씨앗’이라 부른다), 6.25 전쟁, 군 생활 중 겪은 부정부패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이 선생님을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운동가로 만들었다. 학교와 마을, 가정과 교회 공동체가 한 사람의 도덕적 성품과 영적 인격 형성(moral and spiritual formation)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굳이 스탠리 하우워스(Stanley Hauerwas)를 끌어들일 필요 없이 이 회고록을 통해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이 책은 도덕교육과 시민교육의 교과서로 쓰고도 남는다.
“서로의 삶을 좀 덜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이 문장을 선생님은 회고록 서문과 끝부분에서 두 번이나 인용하고 계신다. 19세기 영국 여류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본명 Mary Ann Evans)이 쓴 소설 <미들마치> 72장에서 “What do we live for, if it is not to make life less difficult for each other?”라고 주인공 도러시아가 한 말이다. 도러시아는 평판의 문제가 생겼던 의사 리드게이트를 돕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이 어려웠을 때 그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여성에게는 대학 교육이 금지되었던 시대에 스스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스피노자(Spinoza)의 <에티카>, 포이어바흐(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 다비트 슈트라우스(David Strauß)의 <예수의 생애>를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그녀는 인간 사이의 연대, 특히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할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주장한 작가이다. 도러시아의 입을 빌려 표현한 엘리엇의 말은 선생님의 활동과 저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여준다고 하겠다.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손봉호 선생님의 회고록을 많은 분들이 읽고, 널리 나누어 주시길 바란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을 잘 지키시며 백세를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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