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각하다고 많이들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이 전혀 없는 상황도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북한 같은 사회에서는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이 사회의 모든 중요한 결정을 독점하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갈등이 표출될 수 없다. 부탄 같은 불교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 다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기에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뿐 갈등할 이유가 없다. 그런 사회에는 모든 것이 정체되고 자유, 발전, 개혁 같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갈등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같은 것이 보장된 민주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갈등이 있어야 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이 지나친 것이다. 너무 심각하면 공동체의 힘이 분산되어 약해지고 사회의 안정이 깨어지고 사람들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의 당쟁, 구한말 지도층의 분열, 해방 직후의 사상투쟁 등 우리만큼 갈등이 심하고 그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은 나라도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그런 역사로부터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 세대, 계층, 노사 간 갈등은 항상 있어 왔고 꼭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새 정부가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바란다. 지역갈등은 산업사회 도래로 활발해진 인구 이동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미 많이 줄어졌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최근 젊은이들에게 심각해진 젠더 갈등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에 기인한 것으로 그런 변화가 정착되면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 갈등이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의 민주국가들에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과 밀려들어 오는 난민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유튜브 등 SNS의 범람으로 가짜 뉴스가 창궐하므로 적어도 당분간은 약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거기다가 미국과 한국에서는 보수 그리스도인 일부가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 입장을 진보진영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보고 종교적 열정으로 항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계엄령 선포로 시작된 우리 사회의 큰 혼란에서 상당수 그리스도인이 추위에 떨면서도 기독교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가 선포한 잘못된 계엄령을 열정적으로 지지한 것은 이념의 우상화가 얼마나 심각해졌는가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계엄령 때문에 이루어진 조기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크게 패배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조용하겠지만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잠복해 있어 기회만 있으면 폭발하지 않을까 한다.
이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백해무익의 이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념 갈등의 폐해를 극복하는 데 가장 유리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다. 우선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인정해야 할 것은 보수든 진보든 모든 이념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든 것이고,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누구든지 때와 상황에 따라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예외가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념을 마치 영원한 진리이자 적극적 행동의 기본근거로 착각하고 그것에 목을 매는 것은 그 자체로 침소봉대의 오류이고 그리스도인인 경우에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전적으로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낙태나 동성애도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낙태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념은 정치, 경제, 외교 등 다른 모든 것에도 옳고 그런 것들에 찬성하는 이념은 다른 모든 것에도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은 유치한 감정적 반응이지 성숙한 사람의 합리적인 판단일 수 없다. 더 나아가서 동성애와 낙태를 반대하는 이념은 그 자체로 성경적이고 그것들을 찬성하는 이념은 그 자체로 반기독교적이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과대일반화’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념도 ‘이론’인데, 잘못된 이론을 믿고 그것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은 책임 있는 시민,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거짓 뉴스에 근거한 판단도 옳을 수 없고,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고 유치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와 다른 사람에게 막대한 해를 끼칠 수 있다. 이웃과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오류’가 아니라 비도덕적이고, 성경이 그렇게 강조해서 가르치는 사랑에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사랑에 역행하는 모든 행동은 범죄며 비기독교적이다. 이념도 진리와 사실에 근거해야지 이념에 따라 사실이 해석되고 조작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세상에는 해석을 거치지 않는 ‘사실 그 자체’(brute facts)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은 ‘해석된 사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석에도 한계가 있다. 콩을 팥이라고 해석할 수 없듯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열린 마음으로 이념에 의하여 각색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을 알아보려는 정열이 있어야 한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려면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지 갈등의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위대한 사랑과 그 사랑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에게만 충성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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