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의 진원지는 개신교라고 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갈등에는 국가, 민족, 인종 간의 갈등이 대표적이지만, 그 가운데 종교갈등은 세계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종교갈등이란 ‘종교 간의 갈등’이 아닌, 종교 자체에 의해 유발되는 갈등이다. 특히 한국 개신교 내부의 극우기독교가 일으키는 갈등이 핵심 문제라 할 수 있다. 소위 ‘근본주의 기독교’로 분류되는 극우기독교 그룹은 광장과 SNS, 개교회의 강단설교와 대형 집회를 통해 강력한 정치 이념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그런데 극우기독교의 정치세력화 현상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90년대까지의 기독교 정치참여는 진보-에큐메니칼의 전유물이었다. 그동안 한국기독교에서 전개되었던 민주화 운동, 사회변혁 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 사회 변화의 목소리는 여기서 나왔다. 반면 그 당시 보수-복음주의 기독교는 외견상으로는 정교분리 원칙을 표명하면서 직접적인 정치참여에는 소극적이었다. 물론 보수 기독교의 정치참여 방식은 독재정권과 은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공공연한 정치적 투쟁방식은 표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2천 년대 초, 김진홍, 서경석 목사를 필두로 한 뉴라이트 그룹이 등장하면서 보수 기독교는 뚜렷한 정치세력으로 결집하여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개신교에서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대다수 보수교회 목회자들은 대규모 광장 집회와 주일설교에서 극우적 발언을 과감하게 내뱉고 있으며, 교인들을 정치집회에 동원하면서 주일 강단을 보수 이데올로기의 선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의 극우적 정치 행태는 2024년 12.3 계엄령 전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와 함께 한국 보수 우파 기독교에 의해 심화된 사회적 갈등의 아젠다 역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예전의 개신교 내부의 사회적 갈등의 핫이슈는 폭압적 군사정권의 독재 권력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 민주화의 요구,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였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이후 개신교 내부의 갈등은 국사 교과서 편찬, 사학법 개정, 목회자 세금납부 등이었다가, 최근에 동성애로 지칭되는 성 소수자, 차별금지법, 2030 남성과 여성 간의 젠더 갈등, 페미니즘 논쟁, 그리고 창조론과 진화론 대결이 주된 쟁점이 되고 있다. 여기서 한국개신교의 갈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문화전쟁’(culture war)의 문제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문화전쟁’은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James Davison Hunter)의 <Culture Wars: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1991)에서 명명된 것으로, 미국 보수 우파의 근본주의 기독교가 제기한 낙태, 성(sex), 동성애, 여성의 권리, 가족의 가치, 예술과 표현의 자유, 공교육 방향 등의 문제에 대한 보수 기독교와 진보 기독교 간의 이념 전쟁을 말한다.
최근 들어 한국 보수 기독교가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로 급부상하는 저변에는 이러한 논쟁점에 기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슈들은 단순한 정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가치관, 도덕관의 충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손쉽게 해결하기란 어렵다. 보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그리고 목회자들이 차별금지법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 법령 안에 동성애를 용인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들은 동성애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의 근본적인 왜곡이자, 도덕적 이탈이므로 매우 가증스러운 행위로 간주한다. 이들은 성 정체성과 연결된 동성애 문제를 기독교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므로, 이 이슈로 인한 응집력과 호소력은 간단한 대화와 타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런 이슈는 보수 기독교 전체를 극우기독교 진영으로 견인하는 핵심 의제가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개신교 진영의 구성에서 극우 보수 기독교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다른 한 편에는 ‘리버럴’(liberal)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개신교는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자유주의 기독교’로 이동하고 있다. 정치적 광장과 설교단에서의 거센 정치적 발언에서 드러나는 표층에는 근본주의 기독교가 절대다수를 점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신앙의 심층 구조, 즉 한국 개신교 전반의 흐름은 분명 전통적 기독교에서 탈전통으로, 주술적 신앙에서 합리적·도덕적 신앙으로, 그리고 계몽신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전통적-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탈전통-진보 자유주의 기독교’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기에 기독교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길은 기독교 진리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독교가 믿어왔던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존중하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 ‘합리적 의사소통’과 ‘타당성 구조’*를 획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형성하는 길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조사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의 정치의식과 지형 실태조사 발표와 함의”가 발표되었는데, 그동안의 관성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한국교회 대다수 그리스도인의 정치의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극우 보수적으로 편향되어 있지도 않고 과격하고 폭력적이고 몰이성적인 근본주의 성향에 갇혀 있지도 않다는 새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분명 한국교회에 희망적인 신호를 던져주고 있다. 한국기독교가 사회 속에서 종교적 이익집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부합된 근사치의 원리를 식별하면서, 사회적 공동선을 추구해 나간다면, 분명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복음적 사회 형성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와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타당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는 기독교 신앙이 사회 속에서 공적 진리로서 그럴듯하게, 즉 타당성 있게 받아들이는 구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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