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분열과 갈등의 시대
2025년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시위대에 의해 점거되었다. 이는 단순한 침입이 아니라, 사법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극단적 정치 갈등이 분출된 사건이었다. 경찰과 기자가 폭행당한 현장은 ‘총성 없는 내전’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징후처럼 보였다.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법원 습격, 정당 간 대립, 거리와 대학가의 시위와 혐오 표현까지 최근 한국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있다. 정치적 적대감은 정파 구호를 넘어 일상 언어와 감정에 깊이 스며들었고, 유튜브와 SNS에는 ‘빨갱이’, ‘친일파’, ‘잔당 청산’ 같은 전쟁의 언어가 넘친다. 일부 시민은 ‘찬탄’과 ‘반탄’으로 서로의 정체성을 나누고, 헌법재판소 결정조차 내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은 단순한 정국 불안이 아니라, 체제 위기의 신호일 수 있다.
정치적 분열이 극단화되는 과정에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파벌주의 심화가 자리하고 있다. 뉴욕대 정치학자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는 민주주의가 약화될수록 지도자는 핵심 지지층에 의존하고, 공공재보다 사적 재화에 집중해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려 한다고 분석한다. 인허가권, 특혜, 공기업 혜택 등이 소수에게 몰리고, 배제된 다수는 박탈감과 체제 불신을 키운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제도에 대한 신뢰와 정치의 정당성은 약화하고, 파벌 중심의 정치가 고착화한다. 특히 과거 특권층이 지위 하락을 체감할 때, 그 반발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UC 샌디에이고 대학교의 바버라 월터는 이런 상대적 지위 격하가 희망 상실과 결합할 때 시민들이 제도를 신뢰하기보다 극단주의에 기대게 된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퇴행과 파벌주의, 사적 재화의 분배는 결국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다행히 4월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직후 집단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고, 새 대통령도 선출되었지만, 민주주의의 균열은 여전하다. 한국 사회는 깊은 정치적 분열과 혐오 발언에 잠겨 있으며,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더 이상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무대로 인식된다. 이제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금 얼마나 안전한가? 그리고 이 분열의 시대에, 기독교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분열의 시대, 기독교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예수께서 활동하신 1세기 유대 사회 역시 오늘날 한국처럼 파벌주의와 분열이 만연한 시대였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열심당은 각기 다른 종교적·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뜻과 구원을 자신들의 계파에 결부시켰고, 신앙은 권력과 결속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신앙공동체는 화해와 구원의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배제와 경계가 두드러지는 모습으로 변질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종파적 분열의 한가운데서 파벌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신앙의 길을 제시하셨다. 그는 사두개파의 권위주의, 바리새파의 율법주의, 에센파의 은둔주의, 열심당의 폭력주의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시 소외되었던 죄인, 병자, 세리, 이방인, 여성, 어린이와 함께 식탁을 나누며, 배제 없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특정 파벌이나 민족이 아닌, 모든 인류를 위한 화해와 구원의 ‘공공재’였다. 십자가는 사적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예수의 십자가는 종교와 정치가 만들어낸 배제의 질서를 허물고, 포용과 통합의 원리를 세우는 전환점이었다. 갈등을 조장하는 종교·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는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평화와 화해의 길을 여셨다. 그의 십자가는 죄 사함의 통로를 넘어, 오늘날 심화된 사회적 파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윤리적 대안이자 공동체 회복의 원리로 작동할 수 있다.
기독교 공동체가 회복해야 할 실천
첫째, 정치인은 특정 지지층에 특혜를 나누는 분배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복리를 추구하는 공공재의 공급자여야 한다. 공공기관 인사나 예산을 ‘전리품’처럼 나누어주는 정치 구조는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반면, 교육, 복지, 안전 등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재에 대한 투자는 사회 통합을 가능케 한다. 이는 예수께서 모든 이를 위해 구원을 선포하신 정신과 맞닿아 있다.
둘째,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를 거부하는 시민의 용기가 필요하다. 정체성을 동원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전략은 단기적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약화하고 공동체를 해체한다. 기독교는 먼저 화해와 용서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혐오의 정치에 영합하는 교회의 태도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 5:18)을 받은 공동체다. 교회는 분열의 말이 아닌, 사랑과 화해의 말로 세상에 응답해야 한다. 이념의 경계를 넘는 신앙의 용기를 회복할 때, 우리는 예수의 복음이 분열된 한국 사회를 치유하고 갈등을 넘어서는 희망의 길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복음이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음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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