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작년 12.3 계엄 이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심리적으로 내전에 가까운 대립·갈등 상황을 경험하였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하던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민 등의 정치적 갈등점을 두고 때로는 폭력을 수반한 심각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고, 극단적 정치세력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사람들을 갈라놓는 분열의 선(線)은 여러 가지를 기준으로 그어진다. 세대, 젠더, 출신 지역과 인종, 민족집단, 종교, 이념,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그 중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기도 하지만, 어떤 분열선이든 그것을 봉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격렬하게 찢어 놓는 것은 재물을 둘러싼 갈등이다.
구약의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당하며 야인으로 살던 때에 가족까지 이끌고 목숨 걸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있었다. 온갖 난관을 함께 겪으며 맺어진 이 동지들이 사무엘상 30장에서 분열하고 싸울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린다. 남정네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와서 처자와 재물을 약탈해 갔다. 다윗 무리 600명이 이들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200명은 체력이 고갈되어 뒤처져 후방에 남고, 400명이 계속 진군하여 적을 무찌르고 가족과 재물을 되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이 400명 중 일부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물을 줄 수 없다고 나섰다. 일선 전투에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재물을 돌려받을 자격이 없으니 처자만 데리고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피흘리는 전장에 나선 사람들만이 재물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오늘날 생산에 기여한 사람들만이 그 능력과 기여에 따라서 분배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메아리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범으로 사모해 마지않는 신약 초대교회의 기사에서도 갈등과 원망에 대한 최초 이야기는 재물과 관련된 것이다. 재물이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협할 수 있음은 이미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서 나타나지만 그것은 개인적 득죄(得罪)에 그쳤다. 그러나, 사도행전 6장에 가면 집단적 갈등이 나타난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 과부들이 교회가 행하는 구제에서 빠지는 것 때문에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한다. 성령 충만, 능력 충만, 말씀 충만하던 예루살렘 교회조차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의 언어, 출신 지역, 문화의 차이 위에 재물이라는 갈등의 소재가 더해지자 원망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끊임없이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고 ‘우리’가 더 많이 차지할 수많은 이유들을 찾아낸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저들’을 아예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분열의 선(線)은 이 땅 위에 수없이 많지만, 그 위에 물질, 경제적 분배문제라는 압력이 가해지면 그 선은 어마어마한 파열음을 내며 땅을 찢어 놓는다. 선이 이제는 넘어갈 수 없는 단층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땅이 찢어지면 사람들은 더불어 살 수 없게 된다. 다윗은, 초대교회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섰는가?
다윗은 반란의 분위기마저 풍기는 ‘비류(匪類)들’ 앞에 서서 말한다. 피묻은 무기를 손에 든 사내들 앞에서 다윗은 그 승리가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를 말한다. “우리를 보호하신 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 재물은 우리 손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런 재물을 너희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분배할 수는 없다.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후방을 지킨 사람들이나 같이 그 몫을 받을 것이다” 이 결정은 일회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원망에 직면한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은 교회 앞에 자신들은 구제하는 일 관리에서 손을 떼고 ‘모든 제자들’이 선택하는 사람들 일곱에게 그 일을 맡기겠다는 뜻을 밝힌다. 모든 사람이 이 결정을 환영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운다. 이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헬라식이다. 히브리파라고 할 수 있는 열두 사도들이 헬라파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직에 참여하여 구제라는 민감하고 중요한 영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외되고 있는 집단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권위 있는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자 교회의 분란은 가라앉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 간다”.
오늘날 우리도 다윗과 사도들이 직면했던 것처럼, 자기주장과 원망이 분출하는 나날을 살고 있다. 자기주장으로 가득찬 사나운 무리들 앞에서 한 다윗의 용기 있는 웅변은 경제학 강의가 아니지만, 부의 근원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빛을 보여준다. 우리가 얻게 되는 물질적 부를 만들어 내는 근원은 생산에 참여한 노동, 자본, 토지가 가진 신비한 힘인 생산력(生産力)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다. “네가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또한, 구제에서 소외된 헬라파 사람들의 원망으로 교회의 하나 됨이 흔들릴 때 사도들이 내린 결단은 소득과 부를 둘러싼 경쟁은 물론이고 갈등과 충돌이 심해지는 시대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소수라서, 주류가 아니라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서 말하고 일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공동체를 보존하고 더 힘있게 만드는 지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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