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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개봉한 영화 ‘본회퍼’
<본회퍼: 목사. 스파이. 암살자> / 토드 코마르니키 감독 / 2025
세 얼굴을 가진 사나이, 본회퍼
지난 4월 9일, 영화 <본회퍼: 목사. 스파이. 암살자>(Bonhoeffer: Pastor. Spy. Assassin, 2025)가 개봉했다. 본회퍼 목사가 소천한 지 80년이 된 날을 기념하여 특별히 이 날짜를 개봉일로 선택했다는 것이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파이오니아21’의 김상철 감독의 얘기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 ‘본회퍼’ 목사의 생애를 토드 코마르니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본회퍼는 값싼 은총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과 가치를 보여주었고, 특히 나치의 비인간적인 유대인 학살에 저항하여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다 순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바로 본회퍼 목사의 그러한 모습을 세 가지 얼굴로 그려냈다.
첫째,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 목사로서의 본회퍼이다. 영화는 본회퍼가 나치 정권에 의해 타락하고 변질된 독일교회에 맞서 고백교회를 세우고 이끌어가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다. 특히, 고백교회 산하의 핑켈발데 신학교를 운영하며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을 가르치는 모습이 조명되었다.
둘째, 본회퍼는 나치에 저항하기 위해 독일 국방군 방첩국(아프베어)에 위장 취업하여 ‘스파이’로서 활동하는 면모를 드러낸다. 본회퍼는 이곳을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탈출시키는 비밀 작전(Operation 7)을 수행하는 통로로 활용하였다.
셋째, 히틀러를 제거하려는 암살자로서의 본회퍼이다. 본회퍼는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였지만,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그가 겪는 신학적, 도덕적 고뇌를 다루면서, “악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본회퍼 목사의 삶과 신앙을 다룬 영화에서 ‘스파이’, ‘암살자’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선정적인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영화에서 이 부분에 대한 신학적, 윤리적 고민이 충분히 반영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쉽게도 본회퍼가 당면했을 깊은 신앙적이며 윤리적인 고뇌를 담아내는 데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39살의 짧지만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드러내기에 2시간은 너무 부족한 느낌이다. 대신 ‘행동하는 신앙인’으로서 대중들에게 나름 울림을 주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보다 밖이 더 중요한 영화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들어진 본회퍼 관련 영화와 다른 특징을 얘기한다면, 1930년 펠로우십으로 뉴욕 유니언신학교에서 보낸 기간 중 알게 된 흑인 학생 프랭크 피셔(Frank Fisher)와의 깊은 우정을 들 수 있다. 본회퍼는 그를 통해서 영성이 충만한 할렘 교회의 예배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흑인 친구를 옆에 둔 덕분에 백인들이 저지르는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는 명석한 두뇌로 이른 나이에 교수직에 오르고 책으로만 신앙을 이해하던 본회퍼가 흑인들의 핍박받는 현실과 그것을 이겨내는 영성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행동하는 신앙과 사상이 발전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개봉 당시 영화에 대한 역사적 사실 여부나 신학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2만 명도 채 되지 않은 극장 관객 수를 볼 때 신학자나 평론가와 대중이 모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크게 감소한 현실도 있겠지만,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현실을 이길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사실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불안감과 더불어 기대감도 한편에 자리했을 것이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끌어줄 위대한 인물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광장에서는 본회퍼를 말하지만 정작 본회퍼의 삶과 신앙을 보러 극장에 오는 사람들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었다.
영화와 시의성
영화의 흥행과 대중의 사회적 관심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를 우리는 시의성(時宜性)이라 말한다. 영화가 개봉되는 시점에 사회 전반에 흐르는 정서, 가치관, 주요 이슈 또는 논점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나 주제와 깊이 연결될 때 시의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2017)가 천이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로, 개봉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새로운 정부 출범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예로 들 수 있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 배우는 이 영화로 <변호인>(2013)에 이어서 두 번째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갈라진 교인들이 모두 저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함의 근거로 본회퍼의 사상을 들고나왔다는 점이다. “미치광이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라는 본회퍼의 명언을 인용하며 특정 이념에 편중된 채 광장에 모인 교인들은 저마다 ‘미치광이’를 서로 다르게 적용하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사용했다.
이에 대해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는 국민일보 칼럼에서 “반대편의 이념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항하고 싸우는 것을 가지고 본회퍼 같이 행동하는 신앙의 전형이 된다고 보는 것은 본회퍼에 대한 완전한 오독”(국민일보 02.19)이라고 밝혔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저항은 끝없는 인간 사랑에서 나왔고” 아울러 “독일에 대한 애국보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였으며 이 하나님 사랑이 진정 독일을 사랑하는 것이라 확신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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