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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공장과 멈춰버린 꿈 사이에서, <힐빌리의 노래>
<힐빌리의 노래> / J. D. 밴스 / 김보람 역 / 흐름출판 / 2017.
“백인 저소득층은 왜 도널드 트럼프에 열광했는가?”
<힐빌리의 노래>는 한때 공업이 번성했으나 쇠락한 미국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출신인 밴스(James David Vance)가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 ‘힐빌리’(Hillbilly)들이 겪은 몰락과 빈곤을 적나라하게 풀어낸 자서전이다. 밴스는 철강과 자동차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으며 실직자가 속출한 동네에서 성장했다. 해병대 복무와 예일대 로스쿨 진학이라는 개인적 성공 뒤에도 그는 고향에 남겨진 녹슨 공장과 멈춰버린 꿈들이 사람들의 삶을 여전히 옭아매는 현실을 잊지 못했다. 약물 중독, 가정폭력, 우울과 학습된 무기력, 자포자기..... 밴스는 힐빌리의 ‘자기 파괴적 문화’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사실상 이 책은 ‘개천에서 난 용’보다는, ‘용이 날 수 없는 개천의 암울함’을 주제로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오히려 신선함을 느꼈다. 구조적 해석이 학계의 상식이 된 지금, <힐빌리의 노래>는 그 당연한 공식에 저항한다. 오늘날 빈곤 연구는 불평등 구조, 제도, 계급,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로 설명되기를 요구받는다. 개인의 성향이나 문화적 경향을 말하면 곧바로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이라는 비판을 마주하기 쉽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가 ‘문화’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구조적 조건에 종속된 결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밴스는 자신이 몸으로 겪은 ‘힐빌리 문화’, 말하자면 낙담과 분노, 자책과 폭력, 불신과 혐오, 열망과 체념이 교차하는 심리적 풍경을 주저하지 않고 묘사한다. 그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는지, 그리고 그 인식이 다시 그들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한다.
밴스가 보인 빈곤의 문화는 힐빌리의 탓이 아니다. 분명 산업화 경제의 붕괴가 공동체의 심리와 관계망을 심각하게 파괴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는 시스템 실패를 넘어, 시스템 실패가 낳은 절망이 문화적 차원에서 재생산됨을 부각했다. 이 책은 1) 탈산업화로 인해 문이 닫힌 공장들과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 속 힐빌리의 자기 파괴적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 2) 소외된 그들의 문화가 또다시 사회구조적 격차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들이 겪었던 정치적 배제감, 경제적 결핍, 사회적 차별, 문화적 모멸감을 결합해 강력한 정치 에너지로 바꾼 트럼프가 힐빌리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보여준다. 복지 축소, 사회안전망 약화 등 자신들의 삶을 더 곤란하게 만드는 구조를 옹호한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힐빌리 당사자이자 개천을 빠져나온 밴스가 문화적 관점을 택했을 때, 피해자에 대한 비난보다는 오히려 애착을 드러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노력하지 않느냐”라는 식의 비난은 가시적인 구조를 무시한 채 문화적 현상만을 문제 삼는 것이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시스템에 천착해 문화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내부 상호작용을 간과하면, ‘빈곤층이 실제 겪는 삶과 고통’으로부터는 필연 멀어진다. 그것이 이 책의 통찰이다.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아니 ‘애가’(Elegy)는 개인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 또한 어떻게 빈곤에 기여하게 되는지 그 곤고하고 슬픈 과정을 가감 없이 파고든다. 독자로서 힐빌리의 자기 파괴는 ‘비합리적 행동’으로도, ‘부러진 날개로 비상하려는 욕구’로도 읽힐 수 있다. 그래서 밴스가 꺼내든 서사는 불편하고도 귀하다.
한국의 쪽방촌 현장과 비교해보면, 놀랍도록 유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외환 위기 당시에 쪽방촌은 노숙 직전의 최후 거처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저소득, 장기적 실업, 가족 해체, 주거 불안, 임대료 체납, 식량 불안정 등에 따른 구조적 스트레스가 개인의 심리에 깊숙이 침투하고 만성화되면서 쪽방촌 주민 사이에서도 폭력, 알코올 의존, 자존감 상실과 강한 자존심의 발현, 외부인에 대한 높은 경계심, 이웃 간 정과 혐오의 공존 등 독특한 무언가가 발견된다. 사회운동단체는 공동체 활동으로 긍정적 문화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재생산되는 혐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허나 이처럼 주민들이 공유하는 체념과 불신이 해소되지 못한다면 지자체 및 사회복지시설의 일자리, 주거 지원이 제공되더라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반면 교회는 생필품을 다양하게 지원하면서도 빈곤 문제를 신앙 부족으로 치환하며 영적 회개를 촉구하다 보니,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의 오류를 범한다.
이제 한국 개신교는 <힐빌리의 노래>가 던지는 입체적인 시각에 주목하자.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빈곤층을 돕고자 자선과 구호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지원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자명하다. 한편으로는 교회가 구조적 불평등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쪽방촌 내부에 자리 잡은 문화적 코드를 보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신앙인은 빈곤의 구조적 이해와 영적(개인적) 해석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빈곤한 사람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균열, 신뢰의 결핍, 자기혐오의 회로에는 둔감하다. 당신이 정말로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려 한다면, 쉽게 읽히는 책이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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