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일본에서 수입한 ‘지방소멸’이란 단어가 이제 한국에서 지방을 떠올리기 위해 가장 유력한 개념이 됐다. 일본의 전 총무상이었던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가 2014년 5월 발표한 <마스다 보고서>는 일본의 지역들에서 노인은 늘고, 아이를 낳아줄 여성은 부족하니 지방은 후계를 만들지 못해 소멸하고 만다고 주장한다. 히로야는 가임기 여성(20~39세)의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것을 소멸위험지수로 보자고 한다. 직관적으로 한국의 모든 지방은 소멸이 예정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소멸위험지수를 기준으로 1을 밑돌면 쇠퇴위험지역,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이라고 하는데, 전국 시도를 기준으로 보면 전남, 경북, 강원, 전북, 경남, 충남, 충북, 부산까지가 소멸위험지역에 들어가고, 쇠퇴위험지역을 면한 시도는 세종 하나에 그친다. 시군구로 볼 경우 2024년 기준 전체 228개 시군구 가운데 130곳이 소멸위험지역이고,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2047년이 되었을 때 모두가 소멸위험지역이 된다. 지방소멸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인구소멸을 걱정하게 될 상황이다.
미디어와 SNS의 시선은 인구 이야기만 나오면 급격히 우울함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독일의 지식 채널인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는 인구학의 지식을 빌어 “South Korea is Over”(한국은 끝났다)라며 선언하기도 한다. 지방을 다루는 지상파 뉴스에서조차, 이제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기력도 없는 노인들,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지 않은 동네, 하루에 버스 두 대가 채 오지 않는 지역의 대중교통망, 문을 닫는 학교의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
파국은 정해진 것일까? 오해는 걷어내고 진실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지방소멸이 일본과 다른 궤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고령화와 저출산이 전국적인 현상이면서 불균등성이 크지 않는 가운데 장기경향으로 지방소멸이 각 지방에 부과되는 것이라면, 한국의 지방소멸은 비수도권 청년의 유출 성격이 크다. 가만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이 나이 들고 새로운 세대가 줄어든 것이 아니다. 즉, 지방의 청년들이 서울의 대학을 찾아, 일자리를 찾아 공격적으로 이주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8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 여성의 고학력화와 사회진출, 대졸자를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부문의 수도권 확대가 이러한 흐름을 이끌고 있다. 지방에는 제조업의 생산직 일자리나 저부가가치 일자리가 남고, 수도권에는 연구소나 고부가가치 공장(반도체 등)이 전개하는 상황, 이른바 ‘공간분업’의 전개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재의 지방소멸로 드러나는 사태는 적응도 필요하겠지만, 국가적으로는 타개책도 마련할 수 있고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초 수준의 소규모 지자체들은 스스로 교정하기엔 ‘불가역적인’ 지방소멸이 주어진 것으로 보고, 지방소멸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예컨대 노인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1천 원으로 운행하는 택시를 운영하는 것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빈집(空家)을 타지역 청년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그들의 ‘시골살이’를 후원하고 성과를 홍보하는 지자체들도 있다. 이는 어쩌면 지역을 찾는 청년들을 환대하면, 겨자씨 한 알의 기적처럼 지자체를 살려낼 것이라는 소망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반면 최근 뉴스에 나오는 메가시티 프로젝트는 광역지자체들이 힘을 합쳐 지방에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성들이 경력을 형성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자며, 지방 청년의 수도권 유출에 ‘정면’으로 맞서자는 기획에 가깝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부산·울산·경남 광역전철망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를 보강하려 한다. 골리앗에게 돌팔매질을 하려는 다윗과, 갑주를 입혀주는 사울의 노력을 비수도권 광역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모습에 빗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출생·고령화와 청년 유출 모두의 영향을 심각하게 마주하고 있는 지방의 교회들은 말씀의 선포에 앞서, 어떻게 누구를 섬겨야 할지가 완연히 달라진 인구통계적 맥락 속에서 막막한 질문이 되었다. 고도와 같이 막연히 기다려야 할 ‘내국인’ 청년만 찾는 대신, 이미 농어촌과 산업도시의 핵심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고민이 될 것이다. 지방의 작은 공동체들로 유입되는 낯선 종교와 문화로 인한 이주민들과의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성숙한 종교인들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 언어를 벼려내는 것이 당분간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축소되는 지방이라는 문제설정은 단순히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고령화되고 역동성이 쪼그라들고 있는 한국 교회의 평균적인 질문에 덧대어, 변화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맥락까지 교회가 고민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최근 이찬혁의 노래를 듣다가 어렸을 적 교회에서 처음 들었던 ‘복음성가’와, 10대와 청년기 내내 ‘찬양 인도’를 하면서, 또 각종 공연을 통해 접했던 ‘CCM’의 추억이란 게 이제 그저 추억일 뿐, 기독교적 세계관을 이렇게 전달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급격히 재편되는 지방의 예배당과 친교실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도, 어쩌면 본원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모쪼록 교회를 둘러싸고 애쓰는 사람들이 요모조모 열린 마음으로 주변 상황을 느껴볼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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