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방소멸’은 2014년 일본창성회의의 좌장인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를 중심으로 출간된 <마스다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지방의 급속한 고령화와 청년 인구의 유출, 도쿄로의 일극 집중이 마침내는 일본 전체의 인구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제기하였다. 이러한 지방소멸론은 이후 한국에 도입되어, 많은 지자체에 인구 감소와 지역의 쇠퇴에 대한 전방위적인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방소멸론은 수도권으로의 일극집중과 지역의 인구 감소 현상을 정량적인 트렌드로서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추상적인 수준으로만 논의되던 지역 불균형 문제에 관한 관심을 강력하게 환기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지역 인구의 감소는 지자체 세수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행정 서비스와 인프라 유지의 곤란, 지역 상권의 쇠퇴 등의 도미노 효과로 이어지며 지역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이를 지방의 '소멸'이라는 극적인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가져올 파국의 시나리오를 효과적으로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한계와 맹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지역 쇠퇴의 문제를 인구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스다 보고서가 지방소멸의 근거로 제시한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의 인구수로 나누어 인구의 자연 소멸 위험도를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지표는 지역의 쇠퇴 과정을 정주인구의 감소라는 차원으로만 축소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또한 ‘소멸’이라는 단일한 시나리오를 부각함으로써 지나치게 위기감을 부채질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지역의 인구 유출과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산업구조나 지리적 위치, 인접 도시들과의 관계 등에 따라 구체적인 인구 변동의 패턴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지역 쇠퇴의 요인과 그 속도도 서로 달라진다. 하지만 ‘지방소멸론’은 결국 수도권 이외 지역의 ‘소멸’이라는 단일한 시나리오를 제시함으로써, 어떻게든 정주인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이동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앞서 본 지방소멸지수는 철저히 현재 지역에 거주 중인 인구만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며, 이러한 이동의 패턴은 정주인구의 많고 적음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지역의 활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러한 이동의 패턴에 따라서 지역의 변화 시나리오도 달리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근래에는 지역의 붕괴를 정주인구의 감소뿐 아니라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지역의 미래를 가늠하고, 현실적인 대안들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행안부에서는 2021년에 최초로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면서, 인구의 증감 트렌드뿐 아니라 청년들의 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율과 유소년비율, 재정자립도 등을 고려하여, 인구의 변동상을 다양한 지표로부터 평가하고 있다. 또한 주간 내 인구 이동을 고려한 생활인구, 도시농촌 사이를 이동하며 지속적인 교류의 매개를 만들어내는 관계인구 개념을 도입하여, 정주인구 확보에 그치지 않고 이동의 흐름을 만들어 내어 지역의 활력을 유지하려는 노력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책들은 지역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 속도를 조정해 가면서 지역의 활로를 조금씩 찾아 나가는 노력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이렇듯 지방소멸을 정주인구의 문제를 넘어 다각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시도는 교회의 대응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교회의 통폐합이나 노회 조직 등을 재정비할 때, 단순히 인구의 감소만을 볼 것이 아니라 인구 변동의 패턴, 인접 지역과의 관계,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동과 생활권 등을 고려한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청취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활인구, 관계인구의 차원에서, 교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도시농촌 교류의 계기와 관계인구 창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농촌 교회의 농산물 판매, 게스트하우스 운영, 귀촌 청년들에 대한 지원, 그리고 도시 교회의 봉사활동 등을 통해, 도시의 성도들과 지방의 성도들을 잇고, 지역을 경험하고 관심을 갖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노래했다(사 42:3). 쇠퇴해가는 지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주님의 이 마음을 닮아가기를 소망한다. 모두가 지역의 소멸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을 돌아보고, 교회를 넘어 지역사회와 연계하며, 아직 꺾이지 않은 소중한 것들을 함께 이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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