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대학을 위해 한국에 온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비로소 이 땅의 미래를 숙고할 여유가 생겼다. 그러한 사색 가운데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 전망이었다. 작년 이맘때 즈음, 친구와 함께 찾은 대전 여행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울만을 한국의 전부라 여기던 나에게, 밤 10시가 넘자 불빛을 잃어버린 도시의 풍경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충격이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24시간 PC방과 편의점조차 문을 닫은 모습 속에서, 나는 지역이 겪고 있는 현실을 몸으로 느꼈다. 광역시조차 이러한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전체가 맞닥뜨린 위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국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야 할 땅이기에, 그 위기의식은 더욱 절실했다.
실제로 각종 지표가 하락세를 보이는 오늘,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 할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게 기술력과 인재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위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한 청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우선, 닥친 위기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응당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말씀은 삶의 시금석이기에, 우리는 늘 입버릇처럼 우리 소망이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고백한다. 예레미야 29장 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갈 때에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여호와께 기도하라는 명을 받았다. 낯선 땅, 이방인의 통치 아래에서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음은 분명 소망이 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리어 주어진 자원과 기회를 선용할 동기와 지혜가 생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같으시기에, 말씀의 적용점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고 심지어는 세속의 제도와 질서까지도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진실로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 두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바사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셨듯이, 혹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듯이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 아래에서 우리는 요셉의 축복을 누리리라 믿는다.
그러나 태도는 진정으로 살아내야 비로소 태도라 불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마음에 품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교회 공동체와 떼어놓을 수 없다. 온전한 세상을 홀로 이루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구태여 인간에게 창조세계를 돌보는 책임을 맡기셨다.(시편 8:4–6).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는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빛과 소금이라고 불린 까닭이다. (마 5:13~16)
나아가, 마태복음 25장에 서술된 달란트 비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기 다른 양의 달란트를 맡겼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달란트를 숨겨두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왔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는 기뻐하였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서 그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고 그를 쫓아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생명이다. 생명은 무릇 살아 숨 쉬고, 생명을 낳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설령 숨이 붙어있더라도 그것은 죽은 생명이다.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교회는 이 생명을 움켜쥔 공동체가 아니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나 자신도 섬김의 자리에서 이를 절실히 느낀다. 양평동 교회에서 소년부 교사로, 청년부 리더로 섬기고 있다. 또한 이번 학기부터 중앙대학교 CCC의 대표 순장으로 1년간 사역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섬김의 자리가 다양해질수록 더욱 분명히 깨닫는 것은, 우리의 믿음은 실제적 행위와 기준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줄어드는 주일학교 아이들의 수, 축소되는 선교 단체의 모습 등 내가 속한 모집단이 모두 줄어드는 현실은 나로 하여금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운동력일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은 단지 행정적·인구학적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 해체라는 영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교회와 교인이, 그리고 특히 청년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명확하다.
세상 속에서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리는 존재로 서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였듯이(예 29:7), 바울이 빌레몬서에서 살아냈듯이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후 5:18) 그리할 때,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은 지역과 세상을 살리는 실제적인 섬김 속에서도 드러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변함없이 하나님 나라에 있으나, 도리어 그렇기에 그 소망을 품은 자답게 이 땅에서 맡겨진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해야 한다.
진실로 교회가 존재하는 곳마다 죽어가던 땅이 살아나고, 흩어지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며, 무너지는 공동체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그 일의 한가운데에 우리 청년 세대가 서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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