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샌디에고에서의 교환교수 시절, 귀가할 때 편도 2차선을 가다가 신호등을 지나면 얼마 안 가서 1차선으로 좁혀지는 길이 있었다. 그 지역 거주자들은 이렇게 차선이 줄어드는 것을 알기에 신호등 앞에서부터 한 줄로 차를 세워 순서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후 그 지역에 이주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길게 늘어선 차선을 기다리지 않고 2차선으로 가 신호등 앞에 서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얼마 동안 이득을 누렸다. 그리고 몇 주 후 지역민들도 배려의 훈훈함은 온데간데없고 1, 2차선 가리지 않고 앞을 다퉈 다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누구의 탓일까.
최근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Global Nationalism)가 목도되고 있다. 쉽게 말해 너나 할 것 없이 이제 지구공동체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정글이 되었다는 뜻이다. 기독교 정신이 비교적 강하여 원조하고 일정 부분 손해를 감내하던 20세기의 미국은 당시 자국 우선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는 자제하였다. 이제 미국마저도 자국중심주의로 선회하니 자국 우선주의가 전 지구적이 된 것으로 진단된다. 자국 중심성 및 갈등의 지구화, 분열의 가중으로 특징되는 21세기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는 성경에서의 마지막 시대의 모습에 충돌보다는 부합되는 면이 더 많다(단2:41-43; 시2:1-3; 딤후3:1-2; 마24:6-7).
자국 우선주의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주시며 경작하고 관리케 하셨고(창 2:15), 이후 인류를 온 땅에 거하게 하실 때에도 그들의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다(행 17:26).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근면하고 여호와이레와 주신 분복(分福)에 감사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경계를 넘는 침탈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예속되거나 대항하거나 보복하는 일이 따랐다. 사실상 인류 역사상 자국 우선주의가 아닌 적이 있었을까 생각된다.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시각은 (1) 인간은 전적인 타락 속에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고 인식하고, (2) 공동선과 상대방 국가에 대한 배려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시각에 따라 글로벌 정치경제도 하나님의 영역이자 회복의 영역이며, 도예베르트에 따라 하나님의 법 앞에서의 책임이 따른다.
미국 정치는 일견 보수의 자국 우선주의와 진보적 보편가치 내지 글로벌리즘의 싸움처럼 보인다. 신앙적 관점에서는 자국 우선주의나 전 세계를 세속적 보편가치로 뒤덮으려는 글로벌리즘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 및 국가 경영 영역에서의 하나님 나라 회복 운동과 자국 우선주의적 행동은 철저히 분별해야 한다. 아사, 여호시야, 히스기야, 요시야 왕이 산당과 우상을 제거할 때 국익이나 왕권 강화를 노리고 했다면 그것이 주 앞에 인정되었겠는가. 그들은 철저히 나라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진실한 예배와 함께 우상숭배자들과 싸웠다. 신앙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나안 족속 및 이웃 나라들과 그들의 영적 영향력을 거부하려 했다. 이것은 세칭 자국 우선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한편 종말론적 관점으로 보면,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에 빠진 오늘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 도래 전 굴곡의 한 과정일 뿐이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맡겨진 자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착하고 충성된 일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중 한 가지는 무너진 터, 사회적 자본을 쌓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손해를 감내하면서 질서를 지키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은 신뢰와 상호호혜의 사회적 자본이 된다. 누군가 공적 자본인 사회적 자본을 갉아 그것으로 사적 이익을 취하는 불의한 일을 만나도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자본을 쌓는 일을 멈추면 안된다. 마치 누군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흙탕물을 일으키더라도 시냇물은 꾸준히 새물을 흘러내어 기어코 다시 깨끗한 냇물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경영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건한 경영인에게 보수와 진보 프레임이 아닌 하늘에 속할 것인가 땅에 속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면,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나 글로벌리즘이나 모두 극복할 대상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의 물결은 한두 기업이 거스르고 넘기에는 벅찬 대상일 것이므로, 자국 우선주의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다국가 기업 연합’(Multinational Corporate Alliances)을 고려해봄 직 하다. 이미 특정 국가에의 종속을 막기 위한 ‘오픈 RAN 연합’(Open RAN Alliance, 5G 네트워크 개방형 표준화를 추진하는 글로벌 협의체)나 배터리 종속을 막기 위한 ‘다국적 배터리 연합’(Multinational Battery Alliance) 등 유사 사례가 있다. 이 연합들을 연구하여 선한 기업 연합을 이루어 그 안에서 질서를 지키고 배려하고 상호호혜를 준수한다. 세계 교회는 이 연합들을 격려하고 기독교 대학은 이 연합들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일할 인재를 키운다. 다 함께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를 경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이루어나간다. 세상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떠나 이런 움직임은 어두운 바다의 등대 불빛으로 맛을 내는 소금으로 모든 이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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