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급부상하면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는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과 기후협력, 인권 증진 등 보편적 규범은 점점 균열을 보이고 있다. 세계는 ‘개방의 시대’에서 ‘경쟁과 자립의 시대’로 이동하며, 각국은 국제적 책임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세계화의 피로감과 지정학적 갈등이 낳은 시대적 흐름이다. 오랜 기간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진영을 주도하며, 인권과 경제적 자유 등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게 되었는가? 더 나아가 자국 중심주의의 확산은 기독교 세계관과 양립 가능한가?
자국 우선주의의 대두에는 경제 구조의 변화와 사회적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미국은 중국의 급속한 산업 성장과 생산기지 이전으로 산업 기반이 약화되었고, 지역 공동체는 일자리를 잃었다. 이 모든 변화는 세계화 과정에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중하층의 불만이 정치적 움직임으로 번져 ‘잃어버린 미국’을 되찾자는 트럼프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급속한 기술력 확대는 패권 경쟁을 촉발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교류와 관여를, 2000년대 오바마 행정부는 견제와 균형을 강조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는 경쟁과 충돌로 변화했다. 대중국 강경 기조는 이제 미국 정치에서 초당적 합의로 굳어졌다. 역사적으로 고립주의와 관여, 혹은 팽창주의를 반복해온 미국이 다시금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국 우선주의의 흐름은 이제 신앙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기독교는 인권, 평화, 정의를 중시해왔으나, 동시에 국가적 헌신과 신앙을 결합하는 경향도 존재했다. 특히 보수적 복음주의는 미국을 하나님이 택한 나라로 인식하면서, 국가의 번영과 안보를 신앙적 사명과 연결짓는 경향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러한 신앙과 애국주의의 결합은 정치적 담론과 맞물려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그런데 복음의 본질이 국적과 신분, 인종을 넘어선 사랑과 연대에 있다면, 신앙이 국가의 번영 논리와 결합하는 순간 복음의 보편성은 흔들릴 수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갈등을 넘어, 신앙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복음은 인류 전체의 화해와 구원을 지향하며, 특정 민족의 번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국가주의와 결합한 신앙은 교회가 국가 권력의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초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적 기독교’가 그러했듯, 신앙이 권력과 결탁할 때 복음은 쉽게 왜곡된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국가의 이익을 하나님의 뜻으로 혼동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 교회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준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으며 성장했다. 초기 선교의 유산 속에서 민족적 사명감과 국가적 신앙이 결합했고,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복음의 목표를 ‘국가 부흥’이나 ‘민족적 사명’과 연결하는 담론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은 복음의 보편성을 민족적 서사 속에 가두어 해석하게 만들고, 세계 공동체를 향한 교회의 보편적 사명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자국 우선주의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다. 다원주의로 진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과 신앙의 원리에 뿌리를 둔 분별과 경계의식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진리를 지키되 타인과 사회에 대한 개방성과 공존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하며, 그 구분이 배제나 고립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복음에 뿌리를 둔 세계관은 두려움과 분열의 시대 속에서 신뢰와 협력, 화해와 평화를 향한 길을 보여줄 수 있다. 기독교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국경과 인종, 이념을 넘어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연대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선언은 이러한 삶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의 일원이며, 그에 걸맞게 신앙의 방향도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받은 은혜를 나누는 나라로 성장해야 하며, 복음의 열매는 민족적 한계를 넘어 세계 속 다양한 민족과 국가와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확산되어야 한다. 이는 복음과 기독교 세계관이 자국 중심주의 시대에도 이웃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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