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자국 우선주의 기조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나 보호무역의 영역을 넘어, 국제적 연대와 규범을 약화시키는 강력한 정치적 프레임으로 기능하고 있다.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화가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세계화가 계급 갈등의 국제화, 착취적 노동환경의 외주화, 불평등을 불러온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국 우선주의의 근저에 사회적 불안과 위기감을 배타적 정체성 정치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파시시트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불안과 문화적 위기가 겹쳐 있는 토대 위에 분열과 혐오의 정치가 확산되고 있다.
역사는 경고한다. 20세기 유럽에서 국가(우선)주의와 민족주의는 급진화하여 대량학살과 전쟁으로 귀결됐다. 자국 우선주의가 극우 정치와 결합한 현재, 동일한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종교적 극우 현상은 기독교 신앙의 언어를 빌려 정치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미국 복음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 민족주의는 종교에 기반한 정치적 결집이 어떻게 혐오와 음모론, 폭력의 정당화로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백인 복음주의의 문화적 헤게모니 상실, 다문화화에 대한 위협 인식, 신자유주의 재편에 따른 계층 격차 등과 결합해, 집단적 상실감과 배타적 결집이 상승적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역시 개신교 내 선민사상과 번영 복음, 반공 이념, 신자유주의 가치의 결합이 특정 계층과 세대를 동원하여 정치 현장에 강렬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온라인의 급진 집단과 정치화된 교회의 결합은 혐오 담론을 사회 일상으로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며,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은 타자와 약자를 포용하는 윤리적 자원에서 정치적 특권의 방패로 변질된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가 20대 남성 중심의 극우화와 온라인 커뮤니티 결집, 일부 대형교회와 뉴라이트 집단이 올드라이트와 공동 전선을 형성해 사회적 불만, 젠더·민족·이념 이슈를 배타적 정치투쟁으로 조직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친미·반공주의, 이원론적 종말론, 자유시장 경제의 이상화 등 독특한 신학적 이념적 토대에 위에 사회 변화를 투쟁의 장으로 재정의한다.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신학적 자기비판의 결여와 공공신학의 부재에 있다. 교회가 ‘사회적 타당성’(Social Relevance)를 상실하고 이데올로기와 기득권 방어에 매몰될 때, 신앙 공동체는 급진 정치의 온상으로 전락한다. 선민사상과 번영 복음은 불평등과 기득권을 신의 축복으로 포장하고, 정치적 배제를 신학적 정당성처럼 기만하며, 교회의 윤리 권위와 민주적 공론장을 전면적으로 훼손한다. 안타깝게도 항상 현실 정치 권력에 편에 서 왔던 다수 한국 교회는 중앙 정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여 당황하는 권위주의 정권 계보의 정치 집단과 같은 편에서 변화에 맞서 격렬히 대항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이 정치적 진보와 동일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 신앙은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마 25:34~46). 결코 최근 극우 정치의 기반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종교없는 기독교’(Religionloses Christentum)와 바르트(Karl Barth)의 '종교를 대항하는 종교로서의 기독교'(Das Christentum als Religion gegen Religion) 신학은 신앙이 권력, 민족적 신화, 특권의 수호자를 넘어서 타자와 실제적 연대와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응은 다층적이어야 한다. 첫째, 신학적 각성과 교육을 통해 복음적 사회윤리와 연대의 메시지를 복원해야 한다. 둘째, 교회와 시민사회가 혐오와 음모론에 맞선 공공 담론을 재확립해야 한다. 셋째, 거짓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음모론을 생성하고 인지 왜곡과 확증 편향의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혐오와 배제,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SNS와 온라인 미디어는 배격되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의 강화를 통해서도 공론장의 건강을 회복하여야 한다.
자국 우선주의와 종교적 결집이 결합할 때 사회를 파괴하는 힘으로 전이된다. 미국은 그 힘이 시민에 대한 국가 폭력으로 나타나기 직전까지 와 있는 듯하다. 한국 종교적 극우의 파시즘화도 상당 정도 진행되어 있다. 신앙을 특권 수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여기서 멈춰야 한다.
“교회는 오직 타자를 위해 있을 때만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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