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는 세계의 제도와 권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신자유주의적 규율 아래 시장과 생산 네트워크를 통합하며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는 로컬 사회가 자본의 경제적 논리에 의해 깊숙이 침투되고 종속되는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아리프 딜릭(Arif Dirlik)이 지적하듯, 생산의 초국적화와 자본주의의 탈중심화, 글로벌 기업의 등장은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국민국가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오늘날 국민국가가 국민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보았다. 기존의 국민국가는 국경선을 통제하고 국민을 구성하며 국가성을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와 구조의 재편 속에서, 국민국가는 더 이상 시민들의 삶을 온전히 규율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적 정책이 세계적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적 차원의 협력보다 자국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며 이를 통해 외부를 배제하는 태도인 자국 우선주의는 주로 무역 장벽, 문화 검열, 이민 통제 등의 보호주의 정책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배타적 자국 우선주의의 발현은 국민국가의 약화를 알리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폭력성 강화, 시민사회의 약화, 국가 내 집단 간의 분규와 같은 양상들이 그 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전보다 더 권위주의적이고 강력한 성격의 국가와 마주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는 민족주의·국가주의와 결합된 상태로 작동하며 국가의 권위를 강화한다. 그 과정에서 특정 범주와 기준에 의해 배제되는 사람이 발생한다. 이때 민족뿐만 아니라 인종, 성별, 계급, 종교 등 여러 정체성의 요소에 따라 배타성이 형성된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선택적 배제는 사회 핵심부의 분열을 봉합하고 주변적 정체성과 반대 세력 억압의 정당화 자원으로 활용된다. 즉 배타적 자국 우선주의는 외부를 향한 배제뿐만 아니라 내부적 형태의 배제 논리 또한 동시에 생산해 낸다.
필자는 오랫동안 한류 및 K-컬처에 대해 연구해오며 글로벌 K-팬덤의 다양한 의미 생산과 실천에 주목하여 왔다. 그들은 K-컬처를 통해 사회적·정치적인 참여를 시도하기도 한다. K-컬처 팬덤이 수행하는 ‘대항적 액티비즘’은 국경 간 연대를 통해 자국 우선주의의 배제 논리를 교란하는 실천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2020년 이후 다양한 지역의 저항적 주체들은 K-컬처 팬덤이 공유하고 있는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상징물들, 연대에서 비롯된 사회적 에너지 등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20년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확산된 흑인 인권운동(BLM)에 BTS의 팬덤 ARMY가 자발적으로 모금을 진행하여 후원한 사례가 있다. 이는 K-pop 팬들이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초월하여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정치적 차원의 연대를 이룬 것이다. 둘째, 미국 내 K-pop 팬덤의 주도 아래 트럼프의 털사(Tulsa) 유세 당시 대규모 노쇼 캠페인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이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2021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시민 불복종 운동에 K-pop 팬덤이 참여한 사례이다. 쿠데타 세력은 국가 권력 중심 구조를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시민들은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시민 중 일부는 K-pop의 텍스트를 활용하여 시위 문구로 활용하였으며, 글로벌 K-pop 팬덤은 시위대와 연대하며 그들에게 물자를 지원하였다. 넷째, 2021년 칠레 대선에서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의 지지세력이 K-pop 팬덤의 굿즈와 재생산 콘텐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이는 칠레 정부가 시도한 K-컬처에 대한 타자화 전략을 극복하고, 권위주의 진영의 재집권을 저지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의 배타성에 저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K-컬처 팬덤을 글로벌 자본과 국민국가 경계에 위치한 주변적 ‘로컬’로 간주하였을 때, 이미 한국 사회 내에서 주변화되고 있는 한국 교회 역시 ‘로컬’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한국 기독교는 K-컬처 팬덤이 보여준 액티비즘으로부터 참고할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교회는 배타적 자국 우선주의의 시도에 의하여 전략적으로 호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정 정치세력의 권위 재강화 시도와, 한국 기독교 내부에서 오랫동안 작동해오던 민족주의가 연동된 결과로 보인다. 국가나 정치가 기독교 담론을 민족주의·국가주의와 결합시켜 활용할 때,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배제되거나 종속될 위험이 있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초국적 연대와 참여문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한 K-컬처 팬덤의 액티비즘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이는 교회 간의 연대, 타 국가 교회와의 초국적 연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수평적 연대를 토대로 글로벌 사회문제에 함께 참여하고,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국제 캠페인을 실천하는 전략을 구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은 교회가 다시 공공성을 회복하고, 신앙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 속에서 나누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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