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내가 대학생이 되었던 해에 가족 중 주일성수를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신앙생활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성도들 간의 불화로 영문도 모른 채 교회를 자주 옮겨 다녔고, 공동체에는 마음 붙이기가 어려웠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당연하지만 믿음의 이유를 묻는 말에는 얼버무리기 바빴다. 근근히 살아가던 나의 삶에 썬데이 크리스천으로서의 벽을 부수고 하나님께 다가갈 용기를 얻었던 것은 JDM(예수제자운동) 청소년 수련회에서였다. 처음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그분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를 지켜보고 계시기만 하는 분이 아닌 인격적인 교류가 가능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누적되던 작은 불씨 같은 마음은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하였을 때 발화하게 되었다.
예수제자운동은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 준 첫 번째 공동체였다. 명칭 그대로 예수 닮기 원하는 자들이어서 그런지, 죄인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공동체가 나에겐 신기하기만 하였다. 지체가 리더와 간사님에게서 받는 사랑은 순도가 높았다. 그래서 나도 그 깨끗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리더가 되기 위해 받은 1년간의 디모데 훈련, 피로와 눈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웬만하면 6시간도 자지 못했고, 밀려드는 학교 과제와 훈련 과제에 허덕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나의 죄성과 내가 사랑하는 공동체의 죄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믿음의 공동체였지만 여전히 죄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필요하고 값진 시간이지만, 막상 그때에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훈련을 수료하고, 나는 내가 양육할 한 영혼을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지만 1년간 나타나지 않았다. 캠퍼스의 지체는 모두 스쳐갈 뿐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점점 더 간절해졌다. 리더로서의 자신감과 잃어버린 영혼을 진심으로 구하였다. 내가 느낀 것을 전해줄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다음 해, 나는 자격증 공부 등의 계획으로 휴학계를 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많은 수의 새내기들이 모임에 찾아왔다. 새내기 중 어떤 한 지체를 누가 맡아보겠냐는 간사님의 말에 생각도 않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모임 4년 차에 첫 지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준비되었어도 막상 쉽지만은 않았다. 세상에 상처가 많고 여린 마음을 온전히 품어주기에 나는 한낱 인간이었기 때문에, 주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사랑을 주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법까지 제자들에게 친히 알려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과 동행할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원하던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거짓말을 해도 사랑스러웠고 도망쳐도 놓고 싶지 않았다. 보이는 성경 말씀마다 그 지체에게 전해주고 싶었고, 힘들어할 땐 함께 눈물 흘렸다.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한 우리들을 보실 때에 이렇게 느끼셨을까? 한낱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깊고 넓은 마음을 헤아릴 수 없겠지만, 아주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알고 나니 내게 주신 그 사랑이 더욱 크고 놀랍게 보였다. 지체가 없어 절망스러웠던 기간은, 하나님께서는 내가 리더로 단련되기까지 기다려 주신 시간이었던 것이다.
지체와 함께하는 그해 여름, 수련회에서 나는 한 가지 사인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언가 맡기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느껴본 적 없는 기분에 당황하였지만, 이내 조원들과 당일 되뇌였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무조건 순종. 주님 내게 무엇을 시키실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내가 따르겠나이다. 그리 기도하니 저항할 마음도 들지 않았고, ‘순종’ 그 두 글자가 되려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2학기 예정이었던 모든 계획을 버리고 캠퍼스 워커가 되었다. 녹초가 되도록 지쳐도, 통장에 돈 한 푼 없어도 괜찮았다. 때로는 넘어지고 일이 속수무책으로 꼬여도 무탈했다. 그 시절 나는 “(우리 욕심을) 포기하면 편하다.”, “그냥 하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하나님과 함께한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시는 선물로 교회 가기 싫다고 떼쓰던 막내 동생을 모임으로 이끌어 주셨다. 주님께서 내게 어울리지 않는 귀한 은혜를 주시고, 나는 그 감사함 때문에 행한다.
무조건적 순종. 그것이 이루어지면 가시밭길 위를 걸어도 평온한 삶으로 이어진다. 순종하는 자의 발밑을 지켜주시는 이가 있으니 더 이상 작은 생채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눈앞의 섬김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들에게, 진정 내 삶의 주도권을 포기할 때에 더 크게 주어짐을 이야기 해주고 싶다. 꼭 세상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같은 일을 겪더라도 더 깊이 누리며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떠나서도, 우리 하나님은 내려놓는 자에게 부어주시고 짐을 짊어지는 자의 힘을 덜어주시는 분이다. 미련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섬김이 고민될 때는 일단 부딪혀 보라는 말을 건네어주고 싶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계획하셨음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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