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독일 출신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사진은 쇼핑센터, 아파트, 호화 유람선, 최신 고층건물, 산업 구조물 등 현대 사회의 풍경을 주로 모티브로 삼는데 작품 속 이미지들은 가로세로가 반복되며, 이는 마치 미니멀리즘의 격자 패턴이 현실에 그대로 이식된 것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규격화된 ‘똑같음’(sameness)이 무한 질주의 경쟁을 펼치는 물질 중심주의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99센트>, C 프린트, 207 x 336cm, 1999.
<99센트>(1999)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99 Cents Only Store’ 매장을 소재로 한 것으로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진 100점 목록에 포함되었다. 화면에는 초콜릿, 음료, 땅콩버터, 치약 등 잘 알려진 브랜드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선반을 가득 채운 상품들의 인공적인 광택과 화려한 색채는 소비의 욕망을 암시하며,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환영을 만들어낸다. ‘99센트’라는 저렴한 가격은 글로벌 생산 사슬(주로 개발도상국에서의 저가 노동)에 기반하며, 이는 사실상 '자국민'을 위한 저가 소비 혜택의 이면을 보여준다. 즉 자국민의 편의와 소비가 글로벌 차원의 불균형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99센트>에 가득 찬 상품들은 현대 소비주의가 만들어낸, 기이하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작품 속의 반복적인 구조와 디테일은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 자본과 소비 시스템을 연상시키며, 세련되게 포장된 상품 이미지는 세속적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99센트>는 모든 상품을 균일한 가격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외형적인 평등일 뿐 그 뒤에 숨겨진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제적 격차, 그리고 상품의 일회성이 만들어내는 환경 문제의 상흔을 가려버린다. 이 배타적인 경제논리는 기독교 정신을 뒷받침하는 '평등'과 '이웃 사랑'을 잠식하는 위협이며, 이 작품은 물질적 풍요라는 신기루를 통해 그 은폐된 위협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겨누고 있다.
이러한 배타적 경제 논리는 외적인 영역뿐 아니라, 현대인의 내적인 영혼에도 영향을 미쳐 기독교적 가치를 위협한다. 이 작품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함의를 얻을 수 있을까? 쇼핑몰은 단순히 물품 구입을 위해 찾는 장소가 아니다. 현대인은 쇼핑에 나설 때 필요한 것의 구입 외에도 영적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쇼핑을 즐긴다. 만족을 모르는 욕망은 소비에서 영적 만족과 자아의 만족을 찾도록 만든다. 소비지상주의에서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된다.
고딕 양식의 성당이 하나님의 초월에 대한 관점을 가진 봉건사회의 상징이었다면, 쇼핑몰은 세속화된 세계에 등장한 소비자 문화의 상징이다. 여기에는 고도의 상업주의와 불굴의 환상이 독특하게 뒤섞여 있다.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는 <윤리실종>(Losing our Virtue)에서 소비의 유사 종교적 성격, 즉 상품은 현세적인 성전인 쇼핑몰에서 제공되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로서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이 손에 넣게 된 구원을 증거하고 중재한다고 말했다.

아드레아스 구르스키, <나트랑>, C 프린트, 815 x 437cm, 2004.
“내 이미지는 항상 장소의 해석이다”라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촬영한 장소에는 모종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나트랑>(2004)은 베트남의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대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가구들은 주로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되는 저가 대량 생산품이다. 이 작품은 결국 글로벌 공급망에서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자양분으로 삼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선진국 소비자의 '저렴한 상품' 선호 심리가 다른 국가의 노동 조건과 윤리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나트랑>의 이미지는 반복적이고 질서 정연해 보이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정체성이 희석된 인물의 모습에서 노동의 소외와 구조적 불의를 엿볼 수 있다.
구르스키 작품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포토샵 리터칭, 초고해상도와 같은 디지털 합성 기술은 대상의 객관적 재현을 넘어, 소비 자본이 만들어낸 초-실재(Hyper-reality)의 세계를 구현한다. 이는 상품의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환영(illusion)이나, 노동 현장의 소외를 더욱 극대화하고 인위적인 통제를 암시하는 요소로서 풀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낭만주의 미학에서 ‘숭고’(Sublime)는 신(神)이나 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심과 두려움을 뜻했다. 과거의 ‘숭고’가 신성하고 초월적인 대상에서 비롯되었다면, 구르스키의 숭고는 거대하고 세속적인 소비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99센트>를 통해 현대 사회의 소비 풍경을 새로운 숭고함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완벽하고, 질서정연한 ‘테크노-경제적 숭고’(Techno-Economic Sublime)가 그것이다. 이는 항구적인 가치가 어떻게 일시적인 욕망과 물질로 전복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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