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생성형 인공지능 ChatGPT 3.5가 시장에 나온 지 만 3년이 되었다. 인공지능 연구의 역사가 길고 빅테크 기업들이 상당한 기간 동안 개발했다지만, 본격적인 인공지능의 시대는 2022년 11월에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3년 동안 수많은 변화와 사건, 주장이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인공지능 교과서가 추진되다가 좌초되기도 하고, 엄청난 예산이 인공지능 개발에 책정되었으며, 주식 시장이 매일 새로운 소식으로 오르내렸다. 보통 사람이 자료를 검색하고 글쓰고 일하는 방식도 변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빠르고 급격하고 광범위한 변화를 과연 경험한 적이 있었나 싶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새로운 ‘지능’의 등장이 교회 공동체와 목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발전과 변화, 이해의 규모와 속도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지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속도는 오히려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공지능 자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 문해력(AI literacy)’도 절실하지만, 좀 더 넓은 틀에서 첨단기술의 발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술 발전에는 맥락이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기술은 진공상태에서 개발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시장 질서, 정치적 역학관계, 문화적 흐름의 맥락에서 등장했다. 자본이 충분한 빅테크 기업이 인공지능을 만들었고, 그들은 트럼프 같은 퇴행적 지도자와도 별 문제없이 공존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굶고 병든 사람이 줄지 않고 전쟁이 그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악화되는 듯도 하다.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기존의 부조리한 맥락 안에서의 변화다.
물론 기술 발전에 맥락이 있다는 말은 신기술로 인해 우리 삶의 질서가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변화의 맥락을 직시할 때에는 기술로 해결되는 문제뿐 아니라 새로 야기하는 문제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한창 발전하는 상황에서 그 놀라운 성능에 흥분하고 기대를 품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으로는 부족하다.
둘째, 한 기술의 다양한 쓰임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그 기술을 좀 더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인공지능의 경우 이것이 좀 힘든데,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른바 ‘범용인공지능’을 구현하려 애써 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영역에 이 기술이 침투하다 보니, 어떤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인지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이,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유익한 일이 있고, 무익한 일이 있고, 해악이 되는 일이 있다. 단백질 합성의 수많은 가능성을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가상으로 시도하고 확인하는 연구는 매우 유익하다. 인공지능에게 점심 때 뭘 먹을지, 애인에게 뭘 선물할지 물어보는 것은 무해하지만 무익하다. 반면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생성형 인공지능에 반복적으로 맡기는 일은 엄청난 해악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없으면 아무 말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려 하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지를 구별해야 한다.
셋째, 모두가 인공지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뒤처지면 평생 패자가 될 것이란 조바심은 거짓임을 간파해야 한다. 사용자 편의를 중시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는 점점 사용이 쉬워질 것이다. 여러 개의 인공지능을 번갈아 사용하며 이것저것 시도하는 사람은 앞서 나가는 사람이기보다는 호기심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사용하는 인공지능 중 몇 개는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고, 몇 개는 구독료를 올릴 것이며, 대부분은 어린이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지난 3년 동안 인공지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도, 앞으로 3년 후에 인공지능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모두가 사용하는 기술의 ‘전문가’를 특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극소수의 사람이 인공지능을 지배하고 나머지는 종속되는 상황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술의 발전을 불가피하고 운명적이라 보는 태도는 위험하고 섣부르다. 그보다는 특정 기술이 인류를 위해 유익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할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인공지능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술이라면, 그 발전의 방향을 사기업과 전문가, 시장과 국가에 모두 맡기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 기술이 좋은 세상, 기독교의 개념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복무하도록 해야 하고, 그 주체는 기술 사회의 시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어야 한다.
인공지능의 화려한 성공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지만, 그 환호와 놀람의 뒤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많은 경우 그 이유는, 인공지능이 우리가 처한 현실과 독립적으로 등장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그 쓰임새와 효과에 대한 불명확한 기대와 걱정에 빠지거나, 그 발전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무비판적인 기술 수용이나 이 흐름에 올라타야만 한다는 조바심과 불안으로 이어지기 쉽고, 그 결과 다시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선도할 의지를 무력하게 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렇게 본다면 인공지능의 발전 자체보다 그 발전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문화명령, 곧 다스림의 명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가진 무게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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