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공지능(AI)은 이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불이 문명을 열고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것처럼 AI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난제를 해결할 것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한다. 거부할 수 없는 이 거대한 기술적 파고 앞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인 사유 능력을 대체하고, 영적 정체성마저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올바른 신앙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순히 AI 기술을 잘 다루는 기술적 능력, ‘테크네(techne)’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AI 기술을 사용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인지를 분별하며 사용하는 실천적 지혜, 즉 ‘AI 프로네시스(AI Phronesis)’가 필요하다.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넘어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신앙적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AI가 주는 가장 큰 유혹은 ‘시간 때우기 소비’가 아닌 ‘경험과 생각 아끼기’라는 “압도적인 편리함”이다.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AI를 능동적으로 활용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복잡한 사고 과정을 AI에 위탁하는 ‘인지적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을 겪게 된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길 찾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사유와 성찰마저 AI의 편리함에 맡겨버릴 위험이 크다. 특히 생성형 AI는 즉각적인 보상을 통해 도파민 회로를 자극하기 때문에 깊고 느린 호흡이 필요한 신앙적 묵상의 가치가 경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의식적인 단절, 즉 ‘AI 디톡스(AI Detox)’를 넘어선 ‘거룩한 단절’이다. 기술에 대한 막연한 저항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영적 투쟁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을 능력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라고 했다. 외부의 개입 없이 조용히 하나님과 독대하며 깊이 성찰하는 능력이야말로, AI 기술에 의존하는 ‘사고의 중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사회 곳곳에서 활용되는 ‘거대 언어 모델’(LLM)은 ‘사실성’보다 ‘유창성’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온라인상의 온갖 편견과 오류를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하고 없는 사실을 진실인 양 꾸며내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일으킨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기독교적 AI 리터러시’를 통한 진실의 분별이 절실하다. 우리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질문하며, 신앙의 눈으로 정보의 진위를 검증해야 한다. “이 답변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정보에 숨겨진 왜곡은 없는가?”,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없는가?”를 묻는 메타인지적 질문이 필요하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AI가 만들어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신앙의 본질을 지키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AI가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읽는 능력은 탁월해서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은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그러나 영과 육에 체화되어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은 AI가 결코 흉내낼 수 없다. 우리의 구원과 믿음은 수동적인 언어적 이해가 아닌 성령과의 끊임없는 교제, 즉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적극적이고 실존적인 체험으로 가능하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과 섬김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 충만과 같은 신앙적 경험 또한 AI로는 얻을 수 없다. AI 시대, 그리스도인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사랑과 헌신, 인격적 교제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지켜나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한편, AI가 매끄러운 설교문이나 유려한 기도문을 순식간에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죄에 대한 통회, 성령의 감동으로 흐르는 눈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고백이 부재하다. 편리함과 생산성 향상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복제 불가능한 ‘대면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직접적 체험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AI가 초래할 사회적 불평등과 윤리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AI는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차별을 답습하여 사회적 약자를 배제할 수 있으며, AI 활용 능력의 차이가 빈부 격차로 이어지는 ‘AI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적 AI 프로네시스'는 AI 기술이 모든 이웃에게 공정하게 혜택을 주는지 살피는 ‘포용적 설계’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AI 기술 소외 계층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주고,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지상명령을 AI 시대에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AI 시대,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금 자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 치열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조차 알고리즘에 위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학적 고민과 사유의 힘을 AI에게 넘겨주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주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신앙적 사유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정립하는 근원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교회와 영적 리더들은 그리스도인들이 AI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표류하지 않고, 능동적인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 AI를 단순한 정보 도구가 아닌,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도구로 확장해서 사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기술의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깨어있는 신앙인’. 이것이 바로 AI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진정한 ‘AI 프로네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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