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2017년 어느 날 서울대 사역의 후원자이신 통계학과 이영조 교수님과 함께 막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를 보러 갔다. 그리고 신체가 대부분 기계로 대체 된 등장인물을 소재로 한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를 계기로 여러 근미래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의 인간에 관한 정통 기독교 담론이 안전한가?”를 진지하게 묻게 되었다. 2022년에는 ‘대학원생 북클럽’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함께 AI(인공지능)와 인류의 미래를 다룬 존 레녹스(John Lennox)의 책 <2084>를 매주 한 챕터 씩 읽고 토론하던 중, 그 기간 출시된 생성형 AI, ChatGPT 3.5로 고무되었다. 이듬해 2월에는 ‘그리스도인 인공지능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서울대, 카이스트, 성균관대 기독대학원생들이 함께 하는 1박 2일 북콘서트를 섬기면서, 책 나눔과 전문가 초청특강을 통해서 큰 자극을 받았다. 마침내 ‘AI와 기독교의 관계’라는 논제가 신학생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 겸임교수로 출강하던 침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두 학기 동안 ‘AI와 기독교’라는 강의를 개설하여 강의하기도 했다.
AI는 이미 인간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AI는 대학입학, 회계사, 의사, 변호사 자격시험의 영역을 대부분 정복했다. 이른바 AI의 멀티모달(Multimodal) 역량은 텍스트, 이미지, 소리를 동시에 보고, 읽고, 듣고, 해석하고 종합하며, 인간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창작의 세계, 즉 이미지, 디자인, 작곡, 동영상 제작까지 전혀 문제가 없다. 대학의 거의 모든 전공에서 AI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익숙한 동반자가 되었다. AI를 활용한 생명과학, 로봇공학, 나노기술은 불치병에 대한 신약개발, 손상된 지체복원, 훨씬 정교한 의료 행위, 휴머노이드 비서 등에 엄청난 기대를 선물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자들이 모두 AI 연구자들이었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은 최근 이러한 AI 과학기술의 발전을 논하기에 유용한 담론의 장(field)이다.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의미가 있다.
첫째,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은 포스트모던 해체철학에 기반을 둔 인문학자들이 휴머니즘(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휴머니즘의 부산물로 해석되는 ‘경계’ 이데올로기의 해체, AI 과학기술의 발전과 연동된 인간의 미래를 사유하고 논하는 활동이다. 대표자로는 캐서린 헤일즈(Katherine Hayles), 로지 브래도티(Rosi Bradotti), 스테판 조르크너(Stefan Lorenz Sorgner), 프란체스카 페란도(Francesca Ferrando), 시몬 비그날(Simone Bignall) 등이 있다.
둘째,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진화론과 과학주의 낙관론에 기반하여, 주로 과학자 출신이 주도하고 있는 입장, 즉 AI 과학기술의 발전 결과로 직면하게 될 수도 있는, 현재 자연적 인간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종으로서의 ‘포스트휴먼’(Posthuman)의 가능성을 논하는 활동이다, 대표자로는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맥스 모어(Max More) 등이 있다. 그중 커즈와일, 보스트롬, 모어 등은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담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셋째, ‘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은 AI 과학기술의 도전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과 상술한 두 가지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대안적 담론을 모색해 온 신학자들의 활동이다. 각자의 여러 저서와 논문으로 왕성히 활동해 온 대표자는 데렉 슈어만(Derek Schuurman, 개혁주의), 노린 허츠펠드(Noreen Herzfeld, 가톨릭), 테드 피터스(Ted Peters, 루터교), 브렌트 워터스(Brent Waters, 감리교), 존 레녹스(성공회), 제이슨 테커(Jason Thacker, 침례교) 등이다. 이들은 신학자라고 해서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함께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의 담론은 모두 하나님과 창조의 질서 위에서, 인간과 모든 존재(기계, 동물 등) 사이의 관계를 해석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새롭게 도전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에, ‘기독교적 AI 리터러시’의 구체적인 안내를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AI 과학기술은 기대의 측변 못지않게 우려의 측면도 크다. 딥페이크 범죄, 정보와 여론 조작, 왜곡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편향, 감시사회의 가속화, 일자리 감소, 불평등 심화,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가능성 등. 한마디로 AI는 인류에게 양날의 칼이다. 이것은 포스트휴머니즘의 다수 비기독교 전문가들 역시 이미 잘 인지하고 있다. 문제의식도 공유되며 해결을 위한 제안도 멈춘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냥 ‘AI 리터러시’가 아닌 ‘기독교적 AI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는 세상 담론의 질서에는 여전히 인간의 죄성과 타락의 무게를 과소평가하는 오판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적 AI 리터러시'를 위한 최소한의 신학적 기준을 몇 가지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조론.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했다. ‘하나님-인간-다른 피조물’은 ‘창조의 질서’이며 그 경계는 선한 것이다. 만든 자가 주인이라면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AI는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전 10:31).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질서와 경계가 근대의 오용처럼 차별과 억압의 명분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창 1:26). 인간만이 내재적 삼위일체처럼 충만한 사랑의 인격적 관계 역량을 가지고 있다(허츠펠트, 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따라서 인간과 AI의 경계는 유지되어야 하며, 그 정체성은 상호 대체될 수 없다. 셋째, 종말론. 진화론과 과학주의에 기반한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불치병, 훼손된 지체, 수명의 한계 문제 등을 장차 과학기술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며, 그 실현의 분기점을 ‘특이점’(singularity)으로 명명했다.(커즈와일).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완전한 구원은 결코 없다. 그 구원은 인간 스스로가 아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인간 신’(Homo Deus)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된”(요 1:14) 예수님 뿐이다.(레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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