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03년도 4월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이라크 전쟁을 진행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중심인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 또한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팬데믹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99.99%의 정확도로 인간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며 공식적으로 완료되었다. 그때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조교수로 있던 나는 의과대학 교수직과 이별을 고하고, 캐나다 밴쿠버로 날아가고 있었다. 세계는 전쟁으로, 전염병으로, 희망적인 연구결과로 총천연색이었지만, 나는 약간 회색빛의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란색 희망으로 밴쿠버를 향했다. 밴쿠버에는 ‘밴쿠버 기독교 세계관대학원’( VIEW,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이 있었다. 나의 최종 목적지였다.
2001년도에 어머님의 말기 간암 진단을 알게 되면서, 나는 자식이 의사인데 말기 암이 되도록 알지도 못했다는 자책감과 더 이상 시도할 치료가 없다는 현실 앞에서 너무나도 슬펐다. 많이 슬펐다. 입원하신 어머니의 여명이 두 달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기간 동안 내가 어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항상 말씀 듣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께 시편을 읽어 드리기로 하였다. 하루의 진료와 수술이 끝나고 퇴근하여 어머님의 병실에서 나는 시편을 읽어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읽어드렸던 그 말씀이 이상하게도 나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하였고, 모태신앙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육신의 첫 생명을 주셨던 어머니는 그렇게 영적인 생명을 알게 해주시고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 나는 약 2년간 진료와 강의를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의료의 행위가 무엇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끊임없이 맴돌게 되었다. 그러다가 ‘밴쿠버 기독교 세계관대학원’을 알게 되었고, 나는 미련 없이 밴쿠버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밴쿠버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독교적 의료를 추구하는 지금의 효산의료재단 샘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적 의료는 이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의료현장에서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를 지난 20여 년 동안 고민하며 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한다. 개념이나 구호로서의 세계관이 아닌 아주 현실적인 힘이 된다. 수술을 하다 보면 위기의 순간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집도의의 평소 신념과 기술과 심리의 상태가 아주 중요하다. 스킬은 이미 전문의 정도가 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게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나는 그 창조의 동역자로서 이 수술을 진행하고 있고, 나를 훈련시키신 주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 하시고 결국에는 완성의 자리에 이르게 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실수 없이 마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은 단지 의사의 감정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의료현장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바라보는 도덕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 해준다. 최선을 다했지만 수술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도 “이 합병증이 통계적으로 허용 가능한 범위 속에 있는 건가?” 혹은 “법적 문제 없이 설명할 수 있을까?” 등을 질문하지 않는다. 기독교 세계관은 환자를 법적 상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겁을 먹고 사실을 숨기거나 축소하는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진지하게 진실을 말하고 대처해 나가는 도덕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세계관은 의학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 자체를 새롭게 정의한다. 말기 암환자의 경우 통증의 완화를 위해 ‘완화진정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는, 환자가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조용해진 상태가 성공적 치료라고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적인 성공의 정의는, 치료 과정 중에 환자의 존엄이 끝까지 존중되었는지, 치료가 생명을 도구화하지 않았는지, 의료진이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돌보는 자로 남았는지에 의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상적인 지향점만은 아니다. 실제로 치료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인 깊은 성찰은 더 나은 의료적 방법을 찾아가게 해주는 원천이 된다.
오늘도 질병과 치유, 진단과 치료 사이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실질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해 준다. 날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부터 생수 공급을 받으며, 진료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다. 의료현장은 매일매일이 창조의 날들처럼 늘 새로운 사건들의 연속이다. 날마다 새로운 현장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세계관의 틀이 있기에 오늘도 진료 현장에 서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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