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초등학교 졸업 후, 성경을 교과목으로 삼는 기독 대안학교에 진학하였다. 내가 재학했던 학교는 비인가 대안학교였기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이후 인도로 가서 대학에 진학하였다. 인도 대학 출신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놀라곤 하는데, 이는 혼자 인도로 유학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부모님이 인도 주재원으로 함께 거주하셨는지 묻기도 하지만, 나는 홀로 유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대안학교 선배들 가운데 이미 인도 대학에 진학해 학업 중이거나, 학위를 마친 뒤 현지에서 취업한 분들이 있었기에 낯선 나라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당시 함께 공부했던 대안학교 친구들과 함께 유학을 떠났기에 서로 의지하며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물론 문화, 언어,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새로웠지만, 나의 세계관을 확장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영어와 힌디어는 물론 각자의 출신 지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도인들을 보며 언어는 힘들게 배우는 교과목 중 하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통의 도구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도에서의 대학 생활 통해 북방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다. 대학 동기들 가운데 티베트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유를 찾아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로 티베트 고원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온 이들이었다.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 이후, 달라이 라마 14세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하면서 티베트 망명정부(티베트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인도 정부의 보호 아래 수립된 이 망명정부는 지금도 티베트의 정체성과 문화, 종교를 지키며 자치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특별히 티베트 출신 동기들의 얼굴에 남아 있던 곰보 자국은 자유를 찾아오는 험난한 여정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반복된 동상으로 인해 남겨진 상처였다. 이들을 통해 탈북민들이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오는 여정을 떠올리게 되었고, 통일에 대한 소망과 함께 북방선교에 대한 비전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울러, 현지 기독교 NGO에서 합창단 반주자이자 음악 교사로 봉사하였다. 처음에는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받은 은혜가 더 컸다. 현지인으로 구성된 합창단원들과 교제하며 힌두교 인구가 절대다수인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며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하였고, 그들의 삶을 통해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능력을 볼 수 있었다.
학부를 마친 후에는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 석사과정에 진학하였다. 인도에서의 유학 경험을 살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 조교로 근무하였고, 산업통상자원부 한–인도 양자 협력사업을 담당하였다. 대인도 전문가 세미나와 정책협의회 등을 기획·운영하며 한–인도 산업 정책과 기업의 인도 사업 전략을 지원했고, 학문적 연구가 실제 정책과 현장에 연결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배운 것을 사회와 국가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 중요한 배움의 장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서울대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회는 학부(국제) 예배와 대학원 예배로 나뉘어져 있는데, 나는 대학원 예배 구성원으로서 섬기는 사역자와 교수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삶에 대한 조언뿐 아니라 치열하게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깊었던 시기에 기도 제목을 자유롭게 나누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졸업 이후에도 서울대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가며 취업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는데, 주님의 몸 된 공동체를 통해 인생의 가장 중대하고 연약한 순간에 힘과 용기를 얻었다.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약 2년 시간이 더 걸렸다. 석사과정을 마칠 무렵,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 왔던 아나운서의 꿈을 향해 전진했다. 아카데미에 등록해 발성과 호흡, 뉴스 리딩 연습, 카메라 앞에 서는 훈련을 하였고, 이후 수많은 채용과정을 거치며 주변의 성취와 나 자신을 비교하기도 했고,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또한 “과연 이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여러 번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나를 이끌어 주셨다. 말씀을 통해 내 생각과 마음을 붙들어 주셨고, 기도의 자리에서 조급함을 내려놓게 하셨으며, 서울대학교회 공동체를 통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셨고, 때에 따라 여러 돕는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다. 그 시간은 단순히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의 교만함을 돌아보고 겸손히 무릎 꿇고 나아가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동시에 “방송을 통해 무엇을 전하는 사람으로 설 것인가?”를 분명히 세워가는 연단의 시간이기도 했다.
극동방송 아나운서로서의 사역은 전파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자리이다. 방송 원고 한 줄, 멘트 한 문장, 찬양 한 곡이 영혼을 살린다는 책임감을 갖고, 마이크 앞에 설 때마다 단순히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맡은 청지기’로 주님께서 사용해주시기를 늘 기도한다. 아나운서로 뉴스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PD로서 기획과 제작에 참여하며 한 편의 방송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보게 된다. 전파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이 사역은 특별히 교회에 직접 나오기 어려운 성도, 고난과 외로움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 그리고 복음을 직접 전하기 어려운 북한과 중국, 몽골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기에 주님께서 맡기신 이 귀한 사역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싶다.
돌아보면 나의 모든 삶의 걸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그리고 완벽한 계획안에 있었다. 대안학교에서의 신앙 훈련, 인도 유학과 대학원 생활, 그리고 지금 맡겨 주신 방송선교 사역까지 어느 하나 우연이라 말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이 모든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며, 앞으로의 삶 또한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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