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이다. 속도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 변화를 체감하며 내적으로 소화하고 적응하기에 너무 빠르다. 30년이 한 세대(Generation)라는 인식은 구시대적이 된 듯하다. 자고나면 새로운 공식과 기술이 생활의 중심으로 등장하다보니 X세대, Y세대, Z세대, MZ세대 등등 세대 구분조차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와 함께 <다음 세대>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었으니 이른바 리터러시(Literacy) 문제이다. 일찍이 대학 수학 영역에서 입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하기에 기초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입학생들을 개학 전에 소집하여 기초수학을 가르치는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수학에 그치지 않고, 문장 독해 및 해석과 이해 부분에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국어와 독서 영역에만 해당하지 않고, 지식 정보와 문화 및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전반적인 텍스트(Text) 문해력에 현세대가 심각한 결핍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일상이 된 영상(Visual) 환경이 다음 세대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해석의 가벼움’에 빠지게 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속도는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더구나 내면과 정신이 해석하고 수용할 여지 없이 또 다음 장면이 계속된다. 미디어는 미디어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속도와 장면 이동으로 대중을 유혹한다. 대중은 어쩌면 이런 현상을 통해 현실에 적응한다고 자부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현실의 중압감에서 도피하거나 자아를 잊으려는 몰자아의 한 병적 현상일 수 있다. 현대 문화의 속성 중 하나는 자기 상실에의 미혹이다. 점점 퍼져가는 ‘자기 부정’(Self-denying)이다. 이 현상은 현대인에게 거의 중독처럼 다가와 말초적 자기만족 욕망을 쉽게 버릴 수 없게 만든다. 지금 모든 세대는 ‘숏폼’에 과몰입되어 있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리터러시가 점점 멀어지는 중일까.
우리는 지금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디지털은 이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게다가 모바일 환경에서 단 하루라도 격리된다면 사람들은 금단 현상을 참지 못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독서나 언어 활동은 고인돌 시대의 구습처럼 취급받는다. 종이는 박물관 전시물이 되어가고 전자책, 전자신문, 전자도서관 등,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간다.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지식이 종이에 기록되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아카이브에 단지 부호로 남는다. 인간의 따스한 숨결과 영혼은 차디찬 반도체 디지털 슈퍼캠에 무생물로 집적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인류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대전환을 맞는다. 리터러시 구성, 내용과 소통이 디지털 대세로 전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AI가 거대한 쓰나미를 몰고 온 것이다. 끝내 막강한 지배자 인공지능이 도래한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도전 앞에 서게 되었다.
AI는 더는 특정 산업이나 기술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사고, 판단, 노동, 관계, 심지어 종교와 신앙의 언어, 실천 방식까지 깊숙이 스며들며 삶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를 겁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희망의 비전을 구축 중이다. 격변의 파도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결단해야 한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제 ‘기독교적 AI 리터러시’를 고뇌해야 한다.
‘기독교적 AI 리터러시’란, 단순한 기술 이해를 넘어 인간 이해와 신앙적 분별을 촉구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예수 제자(Nachfolge)의 삶이라면 무릇 세대를 간파해야 한다. 즉 시대의 징조와 현상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 리터러시’(Cultural Literacy), 문화 해석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시대 분별력은 바울 사도가 강조하신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1, 13) 중 하나라고 본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4-17) 외에 갖추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덕목이라면 그 ‘문화 리터러시’, 즉 ‘AI 리터러시’ 아니겠는가.
‘기독교적 AI 리터러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AI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 모두 위험하다. 성경은 기술 자체를 죄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언제나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과 방향성이었다. 바벨탑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 스스로 중심이 되려는 인간 욕망의 문제였다. 따라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AI 활용법’ 이전에 ‘인간 이해의 회복’이다. 인간은 어떤 알고리즘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존엄과 책임을 지닌 존재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회개하지 못하고, 고통을 대신 짊어지지 못하며,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 못한다. 이 한계에 대한 분별이 곧 ‘기독교적 AI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아날로그, 디지털 그리고 AI로 변화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인간”으로 남는다.
인간이 고도의 기계를 장착하여 트랜스휴먼이나 휴머노이드처럼 변한다 해도 그 본질은 ‘하나님 형상’(Homo Imago Dei)이다. 창조주 앞에 피조물로서, 흙의 본질에 하나님 영이 가미된 신비한 존재이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다(시 146:4). 그러니 결코 하나님과 같아질 수는 없는 유한하고 죄로 물든 인간이다. 전능자 하나님 앞에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학(Anthropology)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다면, 곧 성경에 뿌리내린 ‘기독교 세계관’에 겸손히 서 있다면, ‘기독교적 AI 리터러시’는 ‘예언자적 상상력’(Prophetic Imagination)으로 가미된 역동성을 갖추게 되리라. 온갖 우상화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말씀을 따라 AI 시대 영성을 훈련하고 무장해야 한다. 말씀이 정하신 경계를 순종함으로 지키고, 말씀이 허용하신 범주와 그리스도의 지혜로서 AI를 다룬다면 건강하고 균형 잡힌 리터러시의 지혜를 활용하여 혼란한 시대에 “빛”을 비추게 되리라.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6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