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공지능(AI)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급부상하며, 시각예술 분야는 AI에 대한 논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018년 AI 예술 단체 오비어스(Obvious)의 <에드몽 드 벨라드의 초상>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를 크게 웃돌며 낙찰되자 미술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AI의 결과물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며 전통적인 가치 평가 기준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1만 5천 점의 초상화를 학습한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 알고리즘이 내놓은 이 결과물은 “과연 기계도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물음은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작업에 이르러 ‘AI의 창조성’이라는 화두로 더욱 확장된다. 그의 대표작 <기계적 환각>(Machine Hallucination)은 수백만 장의 도시, 자연, 우주 이미지를 학습한 AI가 생성해낸 거대한 시각적 장면을 재료로 삼는다. 관람객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직조해낸 가상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디지털 비주얼을 넘어 오늘날 기술문명의 정서를 압축해 보여주는 ‘시각적 사건’이 된다.

레픽 아나돌(Refik Anadol) - 기계적환각(레픽 아나돌 홈페이지에서)
AI는 학습한 데이터를 통해 자연과 도시의 패턴, 빛의 흐름, 질서의 반복을 재구성하여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에 따라 관객은 기계적 상상력의 힘을 빌린 영상 속에서 자연의 복잡한 질서와 우주의 패턴을 관조하는 듯한 경험을 하며, 이는 AI가 새로운 ‘표현 매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아름다움의 근원에 대한 차분한 성찰이 요구된다. 생성형 AI의 결과물은 기존 이미지 수백억 장에 나타난 패턴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조합한 통계적 계산의 산물이다. 즉 AI가 새로운 개념을 무(無)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재배열(rearrangement)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작품 속 질서와 아름다움의 근원을 데이터나 기술 자체의 산물로만 이해한다면, 창조 질서를 창조주와 무관한 독립된 세계, 곧 ‘자기 완결적 시스템’으로 오해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아름다움의 원천이 기술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는 기독교적 인식이 흐려지고, 압도적인 이미지와 감각적 경험 자체에 매몰되어 실재(實在)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매 순간 다른 이미지를 생성하는 AI의 속성은 작품에서 특정 서사나 고정된 이미지를 소거한다. 관람자가 접하는 순간의 이미지가 곧 독자적인 결과물이 되는 이러한 유동성은 작품에 대한 고정된 해석을 거부한다. 최근 AI는 CG, 센서, 엔진 기술과 결합하여 관객들을 매료시키는데 벽과 바닥, 천장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젝션 맵핑은 관객에게 미지의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환상적 경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해체는 특정 서사나 확고한 실재의 ‘부재’를 입증할 따름이다.
아나돌은 자신의 작품을 방대한 정보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집단적 기억의 시각화’라 명명한다. 그러나 기계가 축적하는 데이터는 결코 인간의 기억을 대체할 수 없다. 기독교적 전통에서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의 저장이 아니라 ‘관계’와 ‘언약’의 사건이며, 인격적 의미를 내포한다. <기계적 환각>의 화려한 시각적 패턴 속에서는 이러한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이 차이는 인간이 얼마나 ‘관계적 존재’인지를 드러내며, 진정한 아름다움과 창조성은 데이터가 아닌 관계와 언약 속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본질적으로 AI가 인간의 창작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몸’이 없기 때문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연구진은 대형 언어모델(LLM)이 꽃과 같은 감각적 개념을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AI는 장미 향기를 맡을 수도, 꽃잎의 촉감을 느낄 수도 없기에 “감각적, 운동적 경험 없이는 꽃이 무엇인지 그 풍부함 속에서 진정으로 표현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방대한 정보체계를 갖추었다 해도, 감각할 수 있는 육체가 없기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공감 또한 불가능하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 이미지가 누군가의 고통, 기도, 눈물, 희망, 체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온전한 의미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형태나 비율을 넘어선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규정했듯이,예술은 인간의 조작이 아니라 “창조 세계 안에 하나님이 심어두신 아름다움과 질서를 재발견하고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AI 미디어는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아디아포라(adiaphora)의 영역에 속한다. 이를 ‘이마고 데이(Imago Dei)’로서 인간의 창조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삼을지, 기술 자체를 덮어놓고 추종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기독교 예술가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조건적인 낙관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아니다. 예술적 창조는 단순히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정한 ‘의미’와 ‘방향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참됨, 사랑스러움, 미덕, 옳음(빌 4:8)과 같은 기독교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을 때, 인공지능 미디어를 하나님 나라의 문화 형성에 기여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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