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공지능과 ‘기술 담론의 허세’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은 이미 20세기 후반에 첨단 기술을 비롯한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심각한 위기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경고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서 엘륄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상가보다 현시대와 이 세상을 더 명확히 밝혀준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기후 온난화, 환경오염, 물 부족, 열대 우림 소멸 같은 인간을 위협하는 전 세계적 환경 재난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유전자 변형 식품, 유전자조작, 핵폐기물, 대유행 전염병 같은 많은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현상이 단지 기능장애나 역기능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하고 깊은 어떤 것과 관련되어 있다. 엘륄은 이 모든 현상을 대체로 예견하면서 근본 원인으로 ‘기술’을 든다.
<기술 담론의 허세 Le bluff technologique>에서, 엘륄은 현대 기술 사회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정당화하는 담론, 곧 기술을 옹호하고 신성시하는 거짓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 담론’을 비판한다. 이런 거짓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해방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기술 사회를 제시할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서 기술 사회를 제시한다. 특히, 기술에 대한 지지자들은 기술을 통해 인간이 예전의 제약에서 해방되고, 예전에 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기술을 정당화하고 기술 사회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기술 담론의 허세’가 존재한다.
엘륄은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 지능에 있는 근본 특성으로 ‘상상력’, ‘즉흥성’, ‘포괄성’을 든다. 첫째, 상상력이 없으면 인간 지능이 아니며, 선험적으로 인공지능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둘째, 예상치 않은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이 불쑥 나타나고, 갑자기 확실한 진리가 떠오르며, 은밀한 사고 작용이 일어나고, 어떤 사고에 입각하여 엄밀한 지적 활동이 전개된다. 이와 같은 즉흥성은 전적으로 인간 지능에 속한다. 반면, 인공지능은 꿈으로부터, 길거리에서의 만남으로부터, 향수나 혹은 희망으로부터 오는 ‘즉흥적인 것’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셋째, 인간 지능은 어떤 상황이나 관계나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나누어질 수 없다. 물론, 상황이나 관계나 문제 등은 분석될 수 있다. 하지만 분석을 통해 얻게 되는 이해 단위들을 모두 합하더라도, 지적 파악에서의 ‘포괄성’은 결코 복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포괄적 지능에서 ‘분절된 것’을 완벽히 복원할 수 없다. 추억도 인공지능의 기억 속에 모두 저장될 수는 있다. 하지만 추억은 인공지능이 실행할 수 없는 어떤 경험에 의해 떠올려진다. 따라서 추억은 인공지능으로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방식으로 배열되고 연계되며 전개된다.(301-302쪽)
그러한 인공지능의 한계는 인간 사고의 함양과도 관련된다. 인간 사고의 함양이란 체험을 시도하는 것이며, 이 체험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이 체험을 수록하는 것이다. 이는 상상력과 신화와 직관에 해당한다. 물론,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할 수 있지만, ‘우연’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인간의 두뇌는 신체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신체에 속해 있으며, 두뇌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신체의 경험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를 함양하고 유발하는 꿈도 두려움도 욕구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은 인간 두뇌에 이루어진 작용 중 하나를 모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결코 아니다.(303-304쪽)
물론, 엘륄이 지적한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첫째, ‘상상력’과 관련하여,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예술 분야 특히 미술과 작곡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조할 정도로까지 성장했으며, 인간을 능가하는 일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둘째, ‘즉흥성’과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자율주행 기술과 맞물려 인공지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셋째, ‘포괄성’과 관련하여, 빅데이터와 맞물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 지능 이상의 ‘포괄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인공지능도 수많은 학습을 통해 인간 이상의 ‘직관’을 가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관습과 의사소통 중 일어나는 비언어적 요소를 데이터화하여 인공지능도 이에 대해 학습할 수 있고 실제 결과도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인간 지능의 특성 및 인공지능의 한계와 관련된 엘륄의 지적은 1980년대 말에 나온 것이기에 현시대와는 현격한 시대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공지능과 관련된 엘륄의 고찰은 현시대에서 인공지능 때문에 초래될 수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 기술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기술의 합리성을 내세우는 기술 담론에 대해, 엘륄은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순수한 합리성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서 언제든 비합리적 힘이 될 수 있고 온갖 일탈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엘륄은 기술 담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진보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경고한 일종의 예언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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