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

요즘은 어딜 가나 인공지능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진부하게 들릴 일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는 점이 신기하다. AI가 그간 불가능해 보였던 장벽을 하나하나 돌파하는 모습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너무나도 빠르게 우리네 삶에 안착했기 때문이리라. 몇 년 전, 나는 AI에는 인간의 창작성이 없고, 고차원적인 문제를 푸는 능력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원하는 내용부터 음성 합성까지 모두 AI에게 맡긴 채 단편영화를 만든다. 나 역시 맡은 강의에 쓸만한 웬만한 문제는 모두 AI가 1분 안에 답을 내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핵 매운맛 문제를 ‘AI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AI를 포함한 기계가 인간과 다른 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다. 이 사상, 즉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에 의한 과거 서구 중심 역사가 ‘경계=억압/차별’을 만들었다고 판단해, 모든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관계성을 향상하려 한다. 즉, 인간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결국 인간과 비인간의 융합을 추구한다. 이 모든 것은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과학주의를 밑바탕으로 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전략과 기독교의 대응>에서,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을 개혁주의 기독교(특히 신칼뱅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우선 하나님과 피조물, 생물과 비생물,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이기 때문에, 인간 마음대로 허물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죄의 본질이 인간 스스로 하나님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라고 가르친다. 두 번째로, 과거 역사에서 나온 숱한 억압과 폭력은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스트휴머니즘적 인간상은 생명도 윤리도 없다. 마지막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의 실현을 약속하는 과학주의는 신학과 철학, 심지어 과학기술 그 자체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빈약한 논리다.
대신, 저자는 신칼뱅주의 기독교가 경계/관계/균형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이 세상에는 각각 나름의 주권이 존재하는 수많은 영역이 있으며, 하나님을 통해서가 아니고선 한 영역 주권이 다른 영역 주권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청지기로서 각 영역 간에 하나님 안에서의 평화(샬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계와 관계 중 어느 하나만 강조하지 않도록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경계만을 강조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반대로 관계만을 강조하면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 교육 역시 이러한 경계/관계/균형을 잘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관, 즉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이자 만물을 향한 청지기인 인간관 교육이 필요하며, 여기서 특히 가정 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번째로, 샬롬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성경과 교수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고, 동시에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다양한 영역을 기독교적·세속적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말고, 모든 영역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되 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융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대두된 포스트휴머니즘이 지닌 문제점, 그리고 기독교와 기독교 교육이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시의적절한 답을 주고 있다. 특히, 과학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와 기독교 교육이 어떤 핵심 가치를 갖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개인적인 질문과 의견이 있다. 우선, 인간과 비인간의 융합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궁극적 목표에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미 내 세대에서는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같은 수많은 영화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있지만, 많은 이가 이를 불쾌해했다. 물론 이것이 대중에게 포스트휴머니즘을 노출시킴으로써 거부감을 줄이는 전략일 수는 있겠다.
두 번째로, 과학계에 종사하는 내 입장에서, “과학주의는 철학적으로 빈약하다.”라는 주장이 그리 강력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수 세기 동안 과학기술이 미친 급격한 파급력에 의해, 과학주의는 오히려 대부분의 철학 이론보다 현실에서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의 근원이 되는 철학 자체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풍조도 있다.
세 번째로, ‘예배’가 무엇인지 좀 더 정확히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개신교에서 ‘예배=설교 말씀’처럼 치부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포스트휴머니즘에 취약하다. 챗GPT 초기 버전이 나왔을 때 이미 <AI 예수>가 등장했고, 일부 교회에서는 목회자 없이 AI 설교자로 완전 대체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려면, 포스트휴머니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경계/관계/균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하려 했을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도한 신정국가 실험이 결과적으로 상당히 폭력적이었고, ‘경계=억압’을 강화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위대한 믿음의 선조도 현실에서 성공하지 못한 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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