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성경에는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 말고 잘 돌보라는 구절은 무수하지만, 가난 그 자체를 장려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잠언에는 가난의 비참함과 가난으로 이끄는 잘못들을 지적한다. 큰 부자는 안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고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 너무 가난하면 그 자체로도 힘들지만 비겁해질 수도 있고, 사기꾼의 유혹에 약해질 수도 있다.
필요한 소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성경이 가르치고 전통사회가 인정하는 것은 노동이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창 3:19). 그동안 ‘노동을 통하지 않는 소득’(不勞所得)은 도둑질로 인식되어 왔다. 사도 바울도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2)고 명령하고 게으름을 경고했으며(살전 5:11) 자신이 근로의 모범을 보였다. 중세교회와 종교개혁은 ‘게으름’을 심각한 일곱 가지 죄 가운데 하나로 정죄했다. 노동을 통한 소득이 가장 정의롭고 안전하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언제나 타당하다.
현대사회에서는 단순한 육체노동은 그 수요가 줄어지고 있다. 기술과 지식이 있어야 하고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배우고 익히고 연습해야 하며 건강도 잘 유지해야 한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여유로 남을 돕고 봉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
현대인의 노동은 대부분 피고용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지식, 기술, 경험뿐만 아니라 성실, 절제, 희생, 봉사 등 인격적인 소양도 필요하다. 구글(Google)이 가장 선호하는 직원은 ‘다른 직원들로 하여금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 한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화되면 그런 직원이 될 수 있다.
노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절약이다. 성경은 절약을 따로 강조하진 않지만, 절제를 성령의 열매로 보고 사치를 금하고 있다. 종교개혁 윤리에 관한 책에서 베버(Max Weber)는 개혁교인들은 ‘세계내적 금욕’을 실천했다고 썼다. 수도승들처럼 세상 밖 수도원에 가서 금욕생활을 하지 않고 오히려 ‘시장 한 가운데서’ 절제와 절약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흔히들 소비를 많이 해야 경제가 잘 돌아가므로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있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절약하는 네덜란드나 독일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산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조차 사치로 여겼기 때문에 개신교 전통이 강한 북유럽 음식은 지금도 맛이 없다. 특히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오늘에는 절약이 인류생존을 위한 도덕적 의무다. 요즘 한국인들이 너무 사치하고 쾌락에 과소비하고 있다.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
구약성경이나 중세 기독교는 이자를 금지했으나 종교개혁자 칼뱅은 굶는 사람에게 빌려준 돈 등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이자를 허용하므로 돈이 돈을 버는 것을 허용했다. 지금은 노동보다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고 한다. 자본은 생산을 위해서 불가결하므로 돈이 돈을 버는 것에는 도덕적 문제가 없다. 재테크도 그 자체로 비도덕적이지 않다.
그런데 도둑질을 위해서도 땀을 흘리는 것처럼 부정한 목적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고, 로빈 후드나 홍길동처럼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서도 불의하게 노동할 수 있다. 노동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만 모든 노동이 다 정당하지는 않다. 같은 시간에 같은 강도로 일하더라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노동의 가치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모든 재테크가 다 바람직하지는 않고 어떤 재테크는 그리스도인이 피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고 안전한 재테크는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다. 저축된 돈이 생산에 이용되어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저축의 연장으로 펀드나 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에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고 바람직하다.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일하는 것이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것처럼 여윳돈을 사회의 이익에 가장 많이 공헌하도록 투자하면 그 재산을 얻기 위한 노동의 가치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칼뱅이 법정 이자만 받도록 한 것 같이 재테크도 과대한 이윤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불로소득의 불의를 범할 수 있다. 증권 같이 수익의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투자에 대해서도 수익만을 위한 단타 매매를 피해야 하며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특히 빌려서 투자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복권이나 가상화폐 투자는 사행성이 강하므로 그리스도인의 투자로는 적절하지 않다. 특히 가상화폐는 마약 거래, 돈세탁, 북한의 해킹 등 범죄의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어 현대 사회에 큰 재앙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고 건전한 시민은 전염병처럼 피해야 할 것이다.
정확한 한계를 설정할 수는 없지만, 노동 못지않게 재테크에 투자한 자본도 그것이 생산에 공헌한 만큼만 이익을 얻는 것이 공정하다. 그 이상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행에 속한다. 장애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만 받을 수 있고, 모든 다른 추가소득에는 자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6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139길 8-1, 3층 (문래동2가)
(07290)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