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분명한 원칙, 복잡한 현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이 악한 세대’(갈 1:4)라 불렀다. 그 이후 세상이 착해진 흔적은 없다. 오히려 기술 문명이 발전하면서 이 세대의 악 역시 더 교묘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만큼 선악의 판단도 어려워졌다.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서가 아니라, 현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인 탓이다. 소위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원리를 말하는 건 쉽지만, 실제 상황에서 돈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하게 꼬인 사회구조와의 관계를 타고 흐르며 이를 움직이는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금융회사에 다니던 한 선배가 “그리스도인이 주식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여러 해 주식을 다루며 늘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성서학자인 나한테 물어본 거였다. 당연히 내가 조언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책으로 배운 얕은 지식을 빼면, 그때 나한테는 실제 주식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주식을 더 잘 아는 형이 나한테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되물었다. 그때 당황하던 선배의 얼굴이 자주 생각난다.
‘재테크’는 흥미로운 신조어다. 예전 같으면 ‘재산 증식’이라 말했을 것이 이제는 재산을 불리는 ‘기술’(테크)이 되었다. 그러니까 예전의 표현이 재산을 ‘불리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재테크는 그렇게 재산을 증식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별것 아닌 것도 같지만, 이런 신조어는 재산 증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재산 증식은 예민한 도덕적 문제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얽혀 사는 세상에서 내 재산의 증가는 대개 다른 사람의 손해를 물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재테크라는 말은 재산 증식을 익혀서 써먹으면 되는 하나의 ‘기술’로 축소함으로써 그런 불편한 질문을 피해간다. 하지만 위험하다. 신앙이 응당 제기해야 할 질문을 막아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사탄의 도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롬 12:2).
안정된 삶 – 신앙과 욕망 사이
우리는 안정된 삶을 원한다. 그래서 돈이 중요하다. 든든한 내일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 중 하나가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전 5:18-19; 전 10:19).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피할 수 없는 긴장을 느낀다. 우리 존재의 궁극적 안전장치이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 그리고 삶의 안정을 위한 현실적 수단인 돈에 대한 사랑 사이의 갈등이다. 마치 예전의 약소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신뢰라는 신앙적 안전장치 그리고 주변 강대국 의존이라는 현실적 보험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던 것과 비슷하다. 이 긴장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악에 물든 삶의 구조라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라는 근원적 자태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 속 안전망 구축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를 쓴다. 결코 거룩하지 않은 구조 속에서 나의 재테크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를 믿는 우리의 신앙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즉답은 없어도, 이런 긴장을 견디며 불편한 물음을 묻는 용기 자체가 이 땅을 살아가는 신앙의 한 중요한 자태일 것이다.
우상이 된 맘몬, 상품이 된 삶
최근 통계조사에 의하면, OECD 조사 대상 17개국 중 우리나라만 ‘물질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 돈이 중요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가족’조차 제치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 사실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야말로 수단과 목적의 순서가 뒤집힌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경의 표현을 쓰자면, ‘맘몬’이 하나님 대신 우리 삶의 최고가치가 되었다는 뜻이다.
언젠가 식당에서 중년여성들 가까이 앉은 적이 있다. 식사하던 내내 그들의 대화 주제는 ‘아파트’였다. 중년 아저씨들 경우에도 가장 익숙한 화제는 부동산이었다. 한번은 뒤늦게 어떤 교수들 모임에 갔는데, ‘펀드’ 이야기가 한참이었다. 무슨 장학금 펀드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투자 ‘펀드’ 이야기였다. 윗물이 이러면 아랫물이 다를 수 없다. “10억이 생기면 1년 정도 감옥에 갔다 와도 좋다”는 설문에 절반이 넘는 고등학생이 “그렇다”라고 했다. 같은 답을 한 경우가 중학생은 40%, 초등학생은 20%가 넘었다. 큰돈이 생긴다면 설사 범죄라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돈이 전부’(마 6:24)라는 신념을 갖게 만드는 그런 사회가 된 셈이다.
돈이 있어야 먹고사는 만큼, 돈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나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돈이 삶의 목적이 되면서 정작 소중한 삶의 가치들을 팽개치게 된다는 사실이다(잠 11:28, 딤전 6:10). 가령 집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물리적 터전이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 꼭 맞는 집을 찾는 게 지혜다. 하지만 우리는 대신 ‘투자 가치’를 따지고, ‘값이 올라갈’ 그런 집을 찾는다. 가정이라는 삶의 가치가 투자 가치에 잠식당하는 것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가족의 일상이 유튜브 콘텐츠가 되는 경우도 비슷하다. 시대가 재테크에 몰두할수록, 내 삶을 상품화하지 않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지키려는 결연함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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