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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영화 ‘타짜’ 시리즈와 ‘시민덕희’-
영화가 사랑하는 돈
상업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제작되기도 하지만, 또한 돈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기도 한다. 일단 돈을 개입시킬 경우 어떠한 이야기도 개연성을 갖기 쉽다. 그것이 사랑이든 살인이든 장르를 불문하고 돈은 갈등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곤 한다.
KBS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공동 선정한 ‘우리 시대의 영화’에 선정된 <타짜>(2006)는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돈에 대한 탐욕이 빚어내는 희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1편부터 3편까지, 관객들은 수십억 원의 판돈이 오가는 화려한 손기술에 열광하지만, 정작 영화가 끝난 뒤 “그 많던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는 드물다.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영화가 시리즈를 거듭하며 어떻게 ‘부정한 돈’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인의 일그러진 재물관을 어떻게 투영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타짜> 시리즈로 본 탐욕의 궤적과 윤리의식
<타짜> 시리즈의 변천사는 돈을 대하는 영화적 윤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인의 돈에 대한 이중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타짜1>(2006)은 부정한 돈에 대한 심판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고니(조승우)는 마지막 판에서 딴 거액의 돈을 불태워버리고 남은 돈은 곽철용(김응수)의 부하와 격투 끝에 기차 밖으로 흘려보내고 만다. 이는 “피 묻은 돈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라는 최소한의 도덕적 결단이자, 하늘의 심판과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돈의 소멸은 불의한 욕망에 따른 죄과를 치르는 ‘희생 제사’나 인간성의 회복으로 읽힐 수 있다.
<타짜 2: 신의 손>(2014)에 와서 부정한 돈은 타협의 대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미나(신세경)의 오빠 광철(김인권)은 판돈 모두를 차지할 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수십억의 돈을 길거리에 뿌리고 나머지 돈은 미나와 대길(탑) 커플이 갖도록 한다. 이것은 일종의 돈에 대한 타협의 자세라 할 수 있다. 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면 나머지 돈의 소유에 대한 죄책감은 줄어든다는 심리를 엿볼 수 있다.
<타짜 3: 원 아이드 잭>(2019)의 결말에서 물영감(우현)의 부하와 주인공 도일출(박정민)이 판돈을 나눠 갖는 한편, 도일출은 함께 작전에 가담한 일행들에게 자신의 돈을 모두 나눠주고 공무원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간다. 주인공과 일행들은 이제 돈을 태우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대신 그 돈을 챙겨 당당히 일상을 영위하거나 새로운 기회로 삼는다. 도일출이 판돈은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박에 대한 경계심은 엿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도일출의 아버지가 전설의 타짜 ‘짝귀’임이 드러나고 그가 아들에게 남겼다는 돈다발이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장면은 언제든 밖으로 나타날 수 있는 내면의 감춰진 욕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의 돈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된 ‘도박 영화’에 나타난 한국인의 돈에 대한 생각은 이중적이다. 주변의 인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돈을 따려는 주인공 타짜에게 관객들은 마음을 주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정작 그 돈을 모두 가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돈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정작 부자를 존경하는 한국인이 적은 한국사회의 특성과도 맞닿은 것은 아닐까.

돈에 대한 가장 의미있는 태도를 보여준 영화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의 <시민덕희>(2024)는 세탁소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 덕희(라미란)가 보이스피싱 사기에 넘어가 3천2백만 원을 잃어버린 이야기로 시작한다. 상가 화재로 인해 삶의 터전을 모두 잃은 '덕희'는 대출을 해준다며 은행 직원을 사칭한 손대리(공명)에게 속아 가진 돈 전부를 잃어버린다.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의 대응에 속이 상할 무렵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에 붙들려있는 손대리로부터 구출요청을 받고 콜센터의 위치를 경찰에 제보하기 위해 동료 직원들과 함께 중국 칭다오로 향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돈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돈 때문에 고통받는 이웃의 일에 용기를 내어 연대하는 모습이다. 봉림(염혜란)과 숙자(장윤주)는 동료인 덕희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휴가를 내고 칭다오에 있는 콜센터를 찾는데 함께 나선다. 특히 살인이 난무하는 위험 속에서도 조선족 출신인 봉림은 중국어 통역으로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우정을 꽃피운다. 세상에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둘째는 돈의 유혹을 넘어 공의를 행하는 모습이다. 이 영화의 끝에는 덕희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는 노력 끝에 보이스피싱 조직의 우두머리와 공항에서 마주하는 명장면이 있다. 너무 무서워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덕희는 할 말을 다 한다. 3,200만 원을 뜯겼다는 말을 듣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보스는 한화로 1억 원도 넘는 10만 달러를 주고 가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지만, 덕희는 오히려 돈다발을 던지며 한마디 한다.
“사기당한 것이 내 탓이냐? 사기당한 내가 등신이냐고? 아니야. 내 잘못 아니고 절실한 사람 등쳐먹는 너, 네가 잘못한 거야! 자수해, 경찰서 끌고 가버리기 전에.”
경찰이 하지 못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자를 추적하고 자신이 사기당한 돈의 4배가 넘는 돈을 가지고 돌아올 수도 있지만 끝내 이 돈의 유혹을 물리치는 덕희의 행동은 우리 사회가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윤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돈이란 우상 앞에서 우리 모두가 굽신거리지 않고 덕희처럼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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