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경제적인 ‘재투자’가 투입된 자본보다 더 큰 이윤을 거두려는 효율성의 논리에 기반한다면, 영적인 의미에서의 재투자는 위탁받은 은사와 재화를 문화적 토양에 뿌려 영원한 가치로 환원하는 행위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단순히 자본의 증식을 꾀하는 수치상의 계산을 넘어, 죄와 타락으로 얼룩진 미적 토양을 다시 일구고 하나님 나라의 찬란함을 시각적 실재로 피워내는 ‘창조적 경작’으로 이어진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경작하고 지키라”(창 2:15)는 문화적 사명을 부여했다. 여기서 ‘경작’(Abad)이란 단순히 땅을 파헤치는 물리적 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황무지를 동산으로 일구는 창조적 돌봄이자, 피조물 속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여 가꾸는 예술적 행위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화의 정원사’로 부름 받은 것은 결코 관념적인 유희나 난해한 수사가 아니며, 만물을 경작하라는 창조주의 명령에 기꺼이 응답하는 실제적인 순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조 본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불순종 이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오늘날의 예술이 허무주의에 함몰되거나 자극적인 상업주의로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상은 이러한 근원적 이탈이 초래한 결과이다. 사람들은 광야의 ‘만나’를 원하기보다는 고급 식당의 최고급 스테이크 ‘필레미뇽’(fillet mignon)을 선호한다. 특히 소비사회에서 예술은 종종 자본의 시녀가 되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이미지 1-돈은로 사랑을 살수 있다)

바바라 쿠르거,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252 × 223.5 cm, 1985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1985년 작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Money can buy you love)는 이러한 소비사회의 속성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입술을 내밀고 조롱하는 듯한 소녀의 표정은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는 전통적 격언을 비웃으며, 인간의 감정마저 상품화된 현실을 폭로한다. 크루거의 냉소는 우리가 방심했던 ‘우상 숭배적 소비’를 직시하게 만드는 뜨끔한 경고문과 같다. 이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문화적 토양이 얼마나 심각하게 침식되고 오염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재투자는 바로 이 파괴된 아름다움을 복구하는 ‘미적 구속’(Redemption)의 형태를 띤다. 미술사학자 한스 로크마커(Hans Rookmaaker)가 역설했듯이 예술은 세상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드러내는 틀이다. 크루거가 진실의 부재와 오염을 날카롭게 폭로했다면, 우리는 그 상실의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은총의 질서를 발굴해야 한다. 세속화된 문화의 토양 아래 묻혀버린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찾아내 다시 빛나게 하는 과정이 바로 기독교 예술의 본질이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재투자의 영적 의미를 몸소 증명한 화가로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를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생애 전반부는 세속적 성공을 위한 투자로 점철되었으나, 연이은 사별과 파산이라는 ‘인생의 겨울’을 맞으며 그는 비로소 자신의 예술적 씨앗을 어느 토양에 심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많은 사람이 그의 후기작 <탕자의 귀향>을 고난과 용서의 경험을 토대로 완성된 결정체로 손꼽는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높이는 투자가 아닌, 하나님 앞에 선 피조물로서 인간의 실존을 정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용서’와 ‘회복’이라는 영원한 미적 가치를 추수했다.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1669
이제 기독교 미학은 예술을 사적인 취향의 고립에서 벗어나 ‘공적 진리’의 영역으로 다시 불러세워야 한다. 예술적 재능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그 선물을 창조주를 대적하는 데 쓰지 말고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도록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 ‘예술적 청지기직’은 거창한 구호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세속적 가치관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시각적 고백’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우리가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전시장을 찾고, 선한 가치를 담은 작품을 후원할 때, 그 아름다운 여정 끝에서 복음은 낡은 종이 위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함께 일군 문화적 토양 위에서 거두어들인 ‘영화로운 시각적 증언’이 될 것이다. 예술품에 대한 애호와 참여는 단순한 자선을 넘어 다음 세대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문화적 모판’을 만드는 일이 된다.
자신에게 위탁된 역량을 선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예술적 영토를 넓히는 것, 파괴된 세상을 다시 경작하여 창조 본연의 빛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최상의 재투자다. 예술은 사치가 아니라 우리의 거룩한 삽질이다. 이제 문화의 정원사로서 삽을 쥐고 세상이라는 정원을 향해 발걸음을 힘껏 내디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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