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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로타 크라이식(Lothar Ernst Paul Kreyssig, 1898-1986)은 나치의 T4 프로그램에 따라 자행된 조직적 살인을 저지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판사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플뢰하, 브란덴부르크 안 데어 하벨, 마그데부르크, 칼스루어(Karlsruhe) 및 베르기쉬 글랏바흐에는 각각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플뢰하에는 그의 이름을 딴 학교도 있으며 레닌(Lehnin)에는 그의 이름을 딴 요양원도 있다. 나아가 동서독 통일의 도화선이 된 1989년 평화혁명에 참여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한 많은 사람도 사실 그의 화해 운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바이스는 지적한다.
그의 100세 생일을 기념하여 1998년, 브란덴부르크 안 데어 하벨(Brandenburg an der Havel)에 있는 상급 지방 법원(Oberlandesgericht)에는 기념 명판이 공개되었다. 지금 브란덴부르크의 일반 변호사회(Generalstaatsanwaltschaft)가 있는 이전 하급 법원 대지에는 2개의 기념비가 있고 그 내부에는 크라이식을 ‘화해의 선지자’(Prophet der Versöhnung)라고 부르며 그의 전기를 출판한 콘라드 바이스(Konrad Weiß)의 비문이 새겨진 명판도 있다. 브란덴부르크 법률가협회는 2008년 5월 50일에 그가 화해를 위한 평화봉사단을 창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명판을 기증했다. 2006년 10월 22일 연방 법무부는 그의 사망 20주년을 기념하여 브리기트 지프리스(Brigitte Zypries) 법무부 장관이 후원하는 추모식을 개최했다. 2008년 7월 5일에는, 1937년부터 1972년까지 그가 거주했던 호헨페르체사르(Hohenferchesar)에서 기념비가 공개되었다.
로타 및 요한나 크라이식(Lothar & Johanna Kreyssig)은 나치에 의해 학살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고 홀로코스트 기간에 아무런 금전적, 종교적 목적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구해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1953년 설립한 이스라엘의 공식 추모 기념관인 야드 바쉠(Yad Vashem)에 의해 의인으로 인정되었다.
2009년에 한스-요아힘 되링(Hans-Joachim Döring)은 마그데부르크에 중부 독일 개신교회(EKM: Evangelischen Kirche in Mitteldeutschland)의 로타 크라이식 에큐메니컬 센터(LKÖZ: Lothar Kreyssig Ökumenezentrum)를 설립했다(Döring, 2011). 이 단체는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가령, 지역 교회, 교구와 총회를 위한 서비스 및 자문을 제공하며 현대 사회 윤리 문제를 다루기 위해 중부 독일 개신교회의 지역 교회, 기관 및 사역과 함께, 정치 및 사회 영역과 협력하고 에큐메니컬 파트너와도 대화를 촉진한다. 이 센터의 핵심 주제는 평화, 정의, 이주, 에큐메니컬 동반관계, 환경 및 발전이다(www.oekumene zentrum-ekm.de). 나아가 이곳에서는 로타 크라이식 평화상을 제정하여 1999년부터 2년마다 수여하고 있다. 그가 남긴 후대에 남긴 기독교 세계관적 유산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첫째, 그는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장애나 질병 여부에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함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T4 프로젝트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한, 진정한 용기를 가진 그리스도인 판사였다.
둘째로 그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침략했던 국가들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화해 운동을 전개했다. 이것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실천한 본보기가 된다. 그는 비록 나치를 반대하는 고백 교회 소속이었지만 독일 개신교회 총회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당시 독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으며, 그것을 호소함으로 많은 전후 독일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어내었고, 실제로 이들은 화해의 상징이 되어 많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과 희생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평화의 봉사를 실천했다.
그의 호소가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이상으로만 들렸으나 결국 이러한 화해 운동은 지속해서 전개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와도 협력하였으며, 지금도 수많은 독일 청년들이 헌신하여 봉사하고 있고 그 결과 독일은 주변국들로부터 다시 인정을 받는 동시에 마침내 재통일되는 축복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로타 크라이식의 신앙은 분명히 행함이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이었으며 따라서 본회퍼(D. Bonhoeffer) 못지않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화해의 사도’로 매우 중요한 기독교 사상가요 실천적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한반도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한국 동란 후 70여 년간 분단되어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남북한에도 이처럼 화해를 위한 평화봉사 운동이 일어나고 장애인들이 더욱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화해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앞장서고 북한에서도 호응한다면, 남북의 군사적 긴장도 완화되며 마침내 한반도도 통일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 지성인들은 크라이식의 화해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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