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년 전쯤 교회 학부모 세미나에 초청받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교사와 교장으로 근무했던 학교를 세운 모 교회로부터 자녀들의 진로를 고민하는 학부모를 위한 기독교 세계관적인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이 주제로 강의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라서 큰 부담이 없이 오랜만에 옛 직장이었던 곳을 찾았다. 그런데 안내받아 들어간 강의실은 온돌방이었고, 그 안에는 두세 살 정도 된 아가들이 온갖 귀여운 괴성을 지르며 기어다니고, 깡총거리고, 웃고 울고 한 마디로 난리였다. 게다가 강의를 듣겠다고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학부모들은 예상보다 너무 젊었다. 그중 몇 명은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안기기까지 했다. “교장 선생님~!” 정신을 차려보니 내 제자들이었다. “세상에! 이 아이들에게, 여기서 진로지도를 하라구요?” 그때에서야, 나는 초청한 전도사님에게 원망스러운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그분은 마침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아가들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강의 자료들이 이미 소용이 없다고 느꼈다. “그저 어떻게든 90분을 버텨야 한다.”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이렇게 질문으로 시작했다. “어떤 강의를 기대하고 오셨나요?”, “이렇게 어린아이들의 진로를 왜 지금부터 준비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 원하세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한 아기 엄마가 용기를 냈다.
“저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또 이 교회를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 신앙인들과 함께 별 어려움 없이 지냈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은 저희 자랄 때와는 다르잖아요? 우리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두려워요.”
“우리 아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뭔가 확실한 로드맵 같은 걸 그리고 싶어요.”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서로의 대화는 이어졌다. 귀엽고 똘망똘망하던 제자들이 어느새 자라 꼭 자기들을 꼭 닮은 예쁜 아기들을 안고 내게 물었다.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젊은 부모들과 함께 아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진로를 고민했다.
그동안 나는 학부모가 자녀 교육의 주체자이며, 교사와 동역하는 존재라고 믿고 그렇게 예비 교사들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실제 양육 과정에서 가지는 혼란과 부담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젊은 학부모들을 위한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았다.
사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바르게 키워야 한다.”라는 본질적인 사명을 알고 동의하고 또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 내 세대가 성장하던 시절과 달리 교회와 기독교 학교 등에서 다양한 신앙 교육을 받은 그들은 오히려 그런 경험과 앎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실천에 대한 갈증과 혼란을 경험한다.
30-40대 젊은 부모들이 매 순간 직면하는 현실에서 기독교 신앙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해주어야 할까?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과연 기독교 신앙은 어떻게 그들을 붙잡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의 고비 고비에서 성경이 말씀해 주시는 진리를 어떻게 실천에 옮길까?
나 역시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고민하는 질문들이기에 감히 정답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제자들의 아이들에게, 게다가 내 큰조카도 곧 아이를 출산할 테니, 할머니로서 귀한 손주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제법 심각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올해부터 몇 교회와 함께 어렴픗한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의 친밀한 대화로 기독교 가치관을 세워갈 책 대화”라고나 해야 할까? 아직 구체적인 타이틀도 마련하지 못한 채 파일롯 형태, 즉 예비적으로 미리 준비한 형태의 세미나를 3-4주 단위로 진행하고 있다.
기본 아이디어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활동이다. 먼저 2주간 부모들을 위한 기독교 세계관 이론 강의를 진행하고, 그다음 1-2주는 아이와 함께 세미나에 참여해서 독후 활동을 한다. 예를 들자면 톨스토이의 단편 우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같이 읽고 등장인물과 상황들에 대한 세계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또 아이들이 요즘 관심을 가지는 몇 가지 동화나 비문학 책 속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의 모습들을 찾아보고, 그것이 왜 문제가 생겼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하나님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완벽한 모습은 어떻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지금까지 안산과 전주의 두 교회에서 실시했는데, 자녀들이 생각보다 엄마 아빠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고무되기도 했다.
내 역할은 약간의 틀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젊은 학부모들은 자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짠해 온다. 기독교 신앙은 책, 설교, 교육보다 먼저 친밀한 관계 속에 삶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 의도적인 틀과 형식을 적용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신앙을 지키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대적 마귀에게 잠식당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이것은 치열한 영적 전쟁이다. 젊은 부모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담아 이런 구호를 선창해 본다. “친밀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6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139길 8-1, 3층 (문래동2가)
(07290)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