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얼마 전, ‘기독교학문연구회’의 학회장을 맡아달라는 전임 회장님의 전화를 받고, 불현듯 학부 4학년 때 이화여대 근처 모 교수님 댁을 오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임스 사이어(James Sire)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아더 홈즈(Arthur Holmes)의 <기독교 세계관> 등을 읽었던 독회 모임이었습니다. 거기서 차분한 인격과 뜨거운 심장을 가지신 양성만 교수님, 김헌수 목사님, 오창희 목사님 등을 만났습니다. 선배님들은 교회와 세상이란 이원론적 도식에 함몰된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다 보니 결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개인의 내면으로만 축소되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다른 세계관을 가진 자들에 의해 잠식당하게 되어, 이제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 저의 마음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이 겪었던 것처럼, 저도 제자훈련과 하나님 나라와 세계 선교에 대한 메시지에 뜨겁게 반응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군사독재와 구조적인 악에 대해 저항하는 학생운동권과 진보적 기독교의 비판적 메시지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 경건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교회, 그리고 세상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궁극적 구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학생운동권, 이 둘 사이에 끼여서 저는 늘 모종의 압박감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학문연구회를 만나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변증법적 방식으로 이 압박감을 해소할 수 있을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학 기간에는, ‘창조-타락-구속’이라는 ‘메타 담론’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계관이, 네덜란드와 미국 기독교계 중심으로 너무 철학적이고 사변적으로 기술되었다는 한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독교 세계관 담론이 성경 말씀에 천착하기보다는 철학적 사변으로 설명되고, 치열한 삶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형이상학적 논의 중심으로 기술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으로 기독교 세계관 논의는 늘 총론만 이야기되고, 현실적인 각론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는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개신교도인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저서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엘륄의 저서들은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으로 구분되지만, 두 측면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면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회학적 측면과 관련하여, 엘륄은 무엇보다 현대 기술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체계가 되어 버렸고, 기술 지상주의를 옹호하는 ‘기술 담론’은 거짓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한편, ‘정치’ 및 ‘선전’과 관련하여, 엘륄은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길 권고하였고, 현대 기술 사회에서 선전이 끼치는 영향력 및 선전을 통해 야기되는 폐해를 분석하였습니다. 나아가, 엘륄은 온갖 역사적 혁명을 분석한 후,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혁명이 무엇인지 제시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기술과 이미지에 짓밟힌 인간의 ‘말’, 현대 세상의 ‘새로운 신화들’, 교묘히 모습을 바꾼 부르주아 등이 분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신학적 측면과 관련하여, 엘륄은 다양한 신구약 성서들을 분석하였고, 기도, 자유, 소망, 돈, 폭력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고찰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륄은 여타 사회학자들이 하듯이 단지 세상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엘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파악하고 이 세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영적 실재’를 폭로하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실로, 엘륄은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세상을 분석한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제가 엘륄에게서 주목하는 바는, 엘륄의 연구와 생애가 삶에서의 철저한 실천을 바탕으로 한 ‘제자도’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엘륄은 오랜 기간 바르트 신학 계열의 잡지 <신앙과 삶 Foi et Vie>의 편집위원장을 맡았고, 목회자가 없는 교구에서 직접 목회 사역을 했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여 유대인들을 구하는 일에 크게 헌신하여, ‘야드 바셈’(Yad Vashem) 재단으로부터 ‘열방의 의인’이란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쟁 후, 엘륄은 보르도(Bordeaux)의 부시장으로 직무를 수행하였고, 오랜 기간 보르도 지역에서 비행 청소년들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더욱이, 엘륄은 관광지 개발을 목적으로 프랑스 남서부의 아키텐(Aquitaine) 해안을 콘크리트로 뒤덮으려는 정부의 무모한 계획에 맞서는 투쟁과 저항을 이끌어, 프랑스 환경보호 운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이처럼 엘륄의 삶은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히 몸으로 구현한 학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엘륄은 혼자서 신앙적 실천을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주위에는 늘 그와 함께한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 기술은 시대의 화두가 되었고, 이른바 ‘경제의 미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갈지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장밋빛 환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 흐름에 빨리 올라타야 한다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팽배합니다. 따라서 기독교학문연구회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연구들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다시 톺아보기’를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만들어진 너무 편리한 인간 상황에 몰두하여 거기에 종속되어 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의 현실적인 삶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재해석하여 십자가의 삶과 정신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지성을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과 생명의 길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은 ‘지성주의’와 싸우는 일을 지속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의 자리로 부르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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