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선생님, 왜 창세기 말씀에 공룡에 관한 얘기는 안 나와요?” 우리 반 아이가 주일 설교말씀 때 나에게 물어본 질문이다. 많은 생각이 났다. 그중 하나를 아이에게 대답해 줬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책이야. 우리 수학책에서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얘기가 나오지 않고 수학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하단다.”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러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조용히 하고 전도사님 말씀 들어요’라고 질문을 일축했을 것 같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가족과 친척 모두가 교회를 다니는 환경 속에서 말씀, 찬송, 봉사는 익숙한 일상이었다. 교회에서 비춰지는 내 모습은 선교도 다녀오고 매주 봉사도 열심히 하는 신앙심 좋은 학생이었을지는 몰라도, 교회 밖에서는 세상의 즐거움을 너무나 사랑했다. 꽤 오랜 시간을 이른바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았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셨던 ‘회칠한 무덤’이 정확히 내 모습이었다. 다행히 군 생활 중에 전환점을 만났다. 군대에서 말씀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선임과 후임을 직접 보았다. 그때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나는 왜 합리화하고 살았을까”를 돌아보게 되었다. 전역 후 어느 교회 금요 철야 예배에서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을 묵상하며 회심하였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는 누구든 자기 부인에서 시작하여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데까지 이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 해도 때때로 넘어지기 쉬운 환경에 놓인다. 종종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며, 구원의 기쁨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것은 교회에 성실히 출석하는 행위로부터 의로워진 것이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진 것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각자 더욱 깨어있는 공동체의 지체로 거듭나야 한다.
요즘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로마서를 한 주에 한 장씩 필사하고, 주일마다 함께 나누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단지 주님 더 알고 싶어서, 더 사랑하고 싶어서 내가 먼저 제안해 본 일이었다. 한 주간 말씀대로 살았는지 서로 나눌 때면 다들 그러지는 못하였다며 부끄럽게 고백한다. 이때 우리는 서로를 절대 정죄하지 않는다. 그저 나눠줘서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다시 회개하는 죄인들이지만,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더 큰 것을 묵상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다.
최근 내가 소속한 연구실의 회식 자리에서 왜 교회를 다니지 않는지 동기와 선후배에게 물어보았다. 꽤 많은 이들은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다가 지금은 바빠서 교회를 떠났다고 하였다. 일부는 지나친 포교 활동 때문이라고, 누구는 신의 존재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다양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공감이 많이 되었고 안타까웠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성경을 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때로 감정이 앞설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어 낸다는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붙들고자 한다.
대학원에서 와서 정말 많은 논문을 보며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 많은 것을 느낀다. 각 사람의 지혜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깊어진다. 자연은 또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었고 얼마나 창의적인지 감탄이 나온다. 스스로가 참 작은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지금의 자리로 부르심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한다.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나는 가끔 엉뚱하게도 밸런스 게임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저널에 투고하기 vs 한 영혼 전도하기’ 같은 상상의 밸런스 게임이 종종 나를 사로잡고 있다. 실험 데이터를 잘 얻고 빠르게 정리해 퇴근해서 내 연구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지 않는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사랑으로 친히 빚으셨다고 믿기에, 그 사실을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통로가 되고 싶다.
저번 달에 3년 전 우리반이었던 아이가 찾아와 나에게 “친구 같은 선생님이 좋았어요.”라고 말해주었다. 말을 정말 안 듣던 아이였다. 일주일에 딱 2시간 만나는 아이를 나는 그 시간만큼은 인내로 사랑으로 잘 지도해보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품었던 사랑이 전해진 것이었을까. “친구 같은 선생님이 좋았어요.”라는 말은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함께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회심, 앞으로의 다짐 등은 모두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한 영혼을 돌이키게 하고 더 복 된 길로 나아가게 하는 이 위대한 사랑을 나 혼자만 누리고 살 수는 없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어진 자리에서, 작으나마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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