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오랜 시간 나를 붙들어 온 화두였다. ‘선데이 크리스찬’(Sunday Christian)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교회 안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도 통용된다. 신앙을 고백하지만, 일상에서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고, 주일에만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 역시 그 범주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에서는 또래 공동체를 섬기는 순장으로, 그리고 유치부 교사로 오랜 시간 봉사해왔기에 외형적으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역시 신앙의 빛이 흐려졌던 시기가 있었으며, 지금도 그 빛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문제는 일터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전략기획팀 팀장으로서 매출 증대와 수익성 개선을 책임지고 있는 나는, 때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판단을 요구받는다. 특히 최근과 같이 고환율과 글로벌 소비 위축 등 경영 환경이 악화된 현실 속에서, 비용 절감과 효율을 위한 의사결정은 불가피하게 타인에게 부담을 전가하거나 관계의 긴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실의 일터는 신앙과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공간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는 순간을 빈번히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선데이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과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조금 더 담대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인가. 요한일서 4장은 이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호감을 넘어선다. 그것은 희생과 존중, 배려와 이해, 그리고 공감으로 드러나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본질에 근거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의 일터에서 이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때로는 냉정한 결단이 요구되고, 분명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랑’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개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깨닫게 된 것은, 사랑이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이유가 삶의 기준을 세상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주님의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태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재물을 추구하는 ‘세상의 기준’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타인을 의식했고,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소진시키며 점점 비윤리적인 선택에도 무감각해져 갔다. 그러나 그 끝에 남은 것은 성취가 아니라 공허함과 고립감, 그리고 점차 무너져 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더 치열하게 살아가면 나아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나의 본질을 더욱 희미하게 만들 뿐이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고, 소통을 즐기던 나는 점차 관계를 부담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욥기 1장 21절의 말씀을 접하게 되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욥의 이 짧은 고백은 나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얻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것들 또한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나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주어진 것 안에서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매이지 않는 삶을 선택하고자 했다. 내 삶의 마지막에 남는 고백이 ‘성공’이 아니라 ‘담대함과 충실함’이 되기를 바랐다. 이것은 열정을 내려놓는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위해, 세상이 아닌 주님의 기준으로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결단이었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나는 경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관계를 전략적으로 인식하고 '사랑'을 점차 추상적인 개념으로 밀어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나는 조직 안에서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되, 그 과정에서 타인을 수단화하지 않으며 공정과 책임, 그리고 배려의 균형을 지켜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개인적 관계에서는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더 사랑하는 쪽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모호한 상황 앞에서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WHAT WOULD JESUS DO?” 이 질문은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고, 적어도 내 욕심이 판단을 흐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스며들 때도 있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의 자리로 부르시며 이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이다. 신앙이 느슨했던 시기,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통해 다시 유치부라는 사역의 자리로 부르시고, 공동체 안에서 다시 예배의 자리로 이끄셨던 경험은 나를 지탱하는 은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하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나의 감정과 판단이 앞서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또한,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내 생각과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려는 반복된 선택의 과정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나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단한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십자가를 짊어진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작은 빛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세상의 기준과 주님의 기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나는 그 경계 위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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