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7세기 네덜란드 사회는 기독교 정신을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했다. 당시 가정이 모든 권위의 원천으로 존중받은 것은 단순한 질서 확립을 넘어선다. 평균 가구원 수는 약 4.75명으로 다른 유럽 지역보다 적었으나 그만큼 유대감은 긴밀했으며, 가정은 세속으로부터 영혼을 지키는 도덕적 방주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니콜라스 마스(Nicolaes Maes, 1634-1693)는 일상과 가정을 모티브로 한 장르화의 선구자로서 피테르 데 호흐(Pieter de Hooch)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같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마스는 주로 아이를 재우거나 바느질하는 여인, 자녀를 양육하고 채소를 다듬는 장면, 식전 기도를 드리는 노파, 성경을 읽다 잠든 노인 등 지극히 평범한 가정을 화면에 담았다. 그는 스승 렘브란트의 스튜디오에서 익힌 명암법과 기법을 활용하여 일상의 사소한 순간 속에 깃든 숭고함을 포착해냈다. 이는 단순한 풍속의 기록이 아니라 경건한 삶을 이어가려는 네덜란드 사회의 집단적 열망이 예술로 발현된 것이었다.

니콜라스 마스, 레이스 짜는 여인,캔버스에 유채, 45.1x52.7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러한 신앙적 풍토는 도르트 공의회(1618-1619)를 통해 제도적 공고함을 갖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정은 신앙교육의 기초가 마련되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지도 아래 성경을 읽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핵심을 암송하며 기독교적 가치관을 내면화했는데, 가정교육을 통해 함양된 미덕은 곧 사회의 번영과 번창을 위한 기초 역량으로 간주되어 국가적 차원에서도 장려되었다. 에스더 판 더 보이(Esther P. de Booy)는 자신의 연구에서 공의회가 확립한 ‘가정-학교-교회’를 잇는 ‘삼중적 끈’(De drievoudige snoer)의 신앙교육 구조를 주목한다. 당시 ‘학교 법령’(Schoolordes)은 교사에게 ‘교실 안의 목회자’라는 영적 지위를 부여하여 요리문답 교육을 의무화하였고, 부모는 ‘가정의 목회자’로서 이를 보충하였다. 결과적으로 아동 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정이라는 경계 없는 공간 속에서 일관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받으며 신앙을 지적 동의가 아닌 신체적 습관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학교와 가정에서 일관되게 학습된 기독교 정신은 신앙의 영역을 추상적인 관념에 가두지 않고 내면화된 경건이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거룩한 습관으로 전이되는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즉 마음속에 새겨진 교리는 일상의 지극히 사소한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발현된 것이다.

피테르 데 호흐, 청소하는 여인과 창가에서 아이를 돌보는어머니,베르너 컬렉션
특히 사이먼 샤마(Simon Schama)는 가정에서의 ‘청결’(Cleanliness)에 대한 집착을 칼뱅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네덜란드 시민에게 청소는 단순한 위생 관리가 아니라, 내면화된 미덕이 외부로 표출되는 과정이자 ‘나태’라는 죄악을 씻어내고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거룩한 의식’(holy rite)이었다. 이러한 일상의 성소화는 얀 라위컨(Jan Luiken)의 상징집에 등장하는 ‘빨래통’(Washtub) 도상에서 드러난다. 라위컨은 빨래통 그림에 “내 모든 죄악을 지워주소서.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시편 51:1, 10)라는 구절을 넣어 일상의 평범한 습관을 영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숭고한 신앙적 훈련으로 격상시켰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가정은 혈연이 모인 곳을 넘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세포이자 핵심적인 공동체였다. 사이먼 샤마는 가정이 거친 물질과 원초적 욕망이 경건을 통해 ‘구속적 온전함’(redeeming wholesomeness)으로 변모하는 공동체로 분석했다. 피테르 데 호흐(Pieter de Hooch)의 작품은 가정을 ‘작은 교회’(Ecclesiola)로 바라본 사실을 드러낸다. 그의 그림에는 격식을 갖춘 예배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방 안으로 따스하게 스며드는 햇살과 아이를 돌보는 정성스러운 손길,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을 통해 신앙이 어떻게 일상 속에 깊이 녹아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데 호흐가 즐겨 사용한 ‘도르크레이크’(doorkijkje, 열린 문) 수법은 단순히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려는 시각적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문밖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집 안의 평화와 질서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의지를 담은 회화적 장치였다.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공간감은 사소한 일상의 현장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려 했던 네덜란드 가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아동 청소년 교육 역시 가정이라는 소중한 삶의 터전에서 세상을 필터링하고 정화하는 '작은 교회'의 기능을 다시 살려내는 데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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