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님의 십자가라 할 수 있다. 그 둘 중에서도 복음주의 교회들은 십자가 구속을 중요시하는 반면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 교회와 특히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을 가지는 신칼뱅주의는 창조에 좀 더 무게를 둔다. 십자가의 구속에 관심을 두면 불가피하게 죄의 심각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회개와 전도가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며 세계관이 다소 이원론적이 될 수 있다. 반면 창조에 초점을 두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 영광을 강조하고 신앙생활의 중심이 정의와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놓이게 된다.
한국 교회는 전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이다. 아직도 기독교 역사가 길지 않고 전통 문화는 기독교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교회 사역의 중심은 전도, 선교, 교회 확장에 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하나님 나라 중심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십자가 못지않게 창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은 창조에 비하면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0여 년 전에 일어났고, 그것은 매우 독특한 의미와 해석의 대상일 뿐 과학적 시비의 대상이 될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달리 창조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현대 과학의 기본 법칙인 인과론적 설명이 개입될 수 있는 사실의 영역에 속하고, 그 내용은 과학계에 거의 정설처럼 수용되고 있는 빅뱅(big bang) 가설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 모든 구성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젯거리가 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 사건에 대해서 최근 기독교계에 제시된 이론들은 ‘젊은 지구론’, ‘오래된 지구론’, ‘유신 진화론’, ‘지적설계론’ 등이 있다고 한다. 그 이론들은 당연히 창세기의 기록에 근거해 있지만 동시에 현대 과학의 주장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참고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자신의 것과 다른 이론을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없지 않고, 심지어 신학대학에서 교수 직위 박탈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가설일 뿐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고 앞으로 증명될 가능성도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감안해야 할 것은 창세기를 기록한 언어는 과학적 언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쓰였다는 사실이다. 신라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던 언어는 오늘에 사는 한국인에게 외국어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같은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살았던 모세 혹은 다른 필자가 그 자신으로부터도 아득하게 먼 옛날 사건을 오늘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성경이 어느 특정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가 만약 오늘날의 언어로 기록되었더라면 자연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옛날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칼뱅의 지적은 참고할 만하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마치 유모가 아기에 하듯 말을 좀 더듬으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분명히 표현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이해를 우리의 부족한 능력에 알맞게 적응시키신 것이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1절). 이를 창세기에 적용해서 말하자면 창세기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정도로만, 그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올바로 순종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될 만큼만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우리가 세상의 창조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기록되었을까? 지금처럼 하루가 24시간이란 사실과 세상은 1주일 안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리려 했을까? 세상이 꼭 몇 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을까?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를 꼭 가르치려 했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리려 하는 것은 창세의 사실이지 창세의 방법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셨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이며 자연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란 사실, 아담과 하와 같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우월하고 귀중하다는 사실,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 고통이 시작되고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할 만큼 범죄했다는 사실 등이 아닐까? 만약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쳐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만큼 중요했다면, 성경은 오늘날 학자들이 서로 논쟁해야 할 만큼 애매하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교계에서는 예정설로 분란이 일어났고, 유아세례 문제로 교회가 갈라졌다. 그 후유증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오늘의 교계에서는 그때처럼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지는 않다. 창조에 대한 의견 차이는 예정설이나 유아세례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사도신경이나 교단의 신앙고백에 들어갈 만큼 기독교 신앙에 기본적이지 않다.
창세기와 관련해서 현대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오히려 “땅을 정복하라”(창 1:28)는 구절의 재해석이고 그 구절 때문에 악화된 환경오염이 전 인류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가를 반성하고 그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6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139길 8-1, 3층 (문래동2가)
(07290)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