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오늘날 대한민국 교계와 학술계에서 창조론을 둘러싼 논쟁은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한쪽에는 성경의 문자적 권위를 수호하기 위해 현대 과학이 이룩한 우주 연대 138억 년을 부정하는 ‘젊은 지구론’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과학적 사실을 수용하기 위해 창세기의 역사성을 포기하고 생명의 진화 메커니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유신진화론’이 있다. 전자는 이성을 외면한 폐쇄성으로, 후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인간의 특별함을 유물론과 타협했다는 점에서 각각 학문적·신학적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성과 절대적 권위를 신뢰하는 복음주의적 신앙고백 위에 서 있는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대립은 시간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충돌이다.
필자는 평생 동안 극미세 세계의 물리 현상을 탐구하는 나노 물리학 분야의 연구에 매진해 왔다. 나노 스케일의 초미세 질서와 물리적 거동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창조주의 정교한 신성과 설계를 매일 같이 확인하는 경이로운 여정이었다. 성경(계시)과 과학(자연)은 창조주를 보여주는 두 개의 창문이며, 자연은 창조주의 신성이 투영된 거대한 그림자이다. 그림자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이성(과학)과 원형을 바라보는 믿음(신학)은 결코 모순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현대 천체물리학의 압도적인 관측 증거들을 동시에 정직하게 품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현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우주의 시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일정하게 흘러왔다는 뉴턴식의 ‘절대적 시간’ 관념에 갇혀 있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창세기의 ‘여섯 날’과 빅뱅 이론의 ‘138억 년’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숫자가 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시스템의 에너지 밀도(중력)에 따라 시계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현대 천체물리학이 말하는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라는 선언은, 오늘날 비교적 정지해 있고 차갑게 식은 ‘현재 지구의 관찰자 시계’로 과거를 역산했을 때의 시간이다. 반면, 창세기 1장의 기록은 시공간이 창조되고 초고온·고밀도의 에너지가 상상을 초과하는 속도로 가속 팽창하던 ‘초기 우주의 시점(창조주의 관점 시계)’에서 현재를 바라본 기록이다. 뜨거운 기체가 급격히 팽창하면 온도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규정하는 물리적 빈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진다.
물리적 계산에 따르면, 우주 초기의 쿼크(첫 물질)가 생성되던 시점의 우주 온도는 오늘날 우주 배경 복사로 측정되는 온도보다 약 3조 배 높았다. 이는 초기 우주의 시계가 현재 우리의 시계보다 3조 배 느리게 흘렀음을 의미한다. 초기 우주 관점에서의 1초는 오늘날 지구의 시계로 환산하면 약 9만 년이라는 거대한 시간 간격에 해당한다. 이 우주 팽창 속도와 온도 감쇄 비율을 대입하여 로그 함수적으로 감쇠하는 시간의 길이를 연속적으로 더해 보면 놀라운 결과가 도출된다. 물질이 생성되고 별과 은하가 형성되어 오늘날 인류에 이르는 우주적 대서사시는, 초기 우주의 중심 시계로 정확히 ‘여섯 날’이 걸리며, 이를 오늘날 지구의 시계로 환산하면 ‘138억 년’이 된다. 즉, 창세기의 6일도 물리적 사실이고, 과학의 138억 년도 물리적 사실이다. 두 시계는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시차를 두고 완벽하게 공존하며 성경의 절대적 진리성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우주 연대를 수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무신론적 진화주의로의 타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화론자들은 무한에 가까운 긴 시간만 주어지면 무작위적인 확률을 통해 흙에서 생명이 돋아나고 인간의 지성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외삽의 오류이다. 단 500글자의 애국가 단락을 138억 년간 무작위적 고속 타자로도 우연히 만들어낼 확률은 없다. 하물며 생명체 속에 담긴 고차원의 유전 정보와 정밀한 메커니즘은 진화주의의 맹목적 믿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창조 세계의 정점인 인간에게는 시공간과 물질을 초월하는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로 만드셨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젊은 지구론’의 해석학적 경직성과 ‘유신진화론’의 유물론적 타협을 모두 넘어서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당대의 이교도 학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도망치듯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위에 기독교적 진리의 체계를 웅장하게 쌓아 올렸듯이,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역시 현대 과학의 빛나는 성과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과학을 적으로 규정하는 폐쇄성은 지성인들과 다음 세대를 교회 밖으로 내모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성경과 과학이 모순같이 보이는 건 아마 성경에 대한 이해가 적던가 과학에 대한 이해가 적던가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렌즈로 재조명한 창세기 1장은 우리에게 더 넓고 깊은 창조론의 지평을 열어준다. 과학의 이성은 진리를 향해 끈질기게 나아가지만, 그 종착지에서 마주하는 것은 거대한 모순이 아니라 창조주가 심어 놓은 위대하고 분명한 신비와 조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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